본문 바로가기
_Enzaim Insight/Enzaim Report

명의(名醫)의 커뮤니케이션 조건

by Enzaim 2011. 7. 19.
중앙헬스미디어에 기고하고 있는 연재 칼럼 내용입니다.
-----------------------------------

요즘 명의라는 단어가 넘쳐 납니다. 명의를 소개하는 방송, 신문 코너도 적지 않죠. 의료계에 계신 분들 중에는
       명의라는 단어에 유난히 거부감을 갖는 분들이 많습니다. 도대체 명의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느냐와 과장된 홍보를
       통해 이름만 요란한 명의들이 즐비하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명의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의사의 본분이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라면 명의가 되려면 실력은 기본이겠죠.
  
여기에 더해 요즘 활발히 논의되는 것이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능력입니다. 자칫 오해하면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자기 PR’ 능력으로만 오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자기 PR 역시 명의가 되기 위해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근본적으로 명의에 있어 요구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의사가 얼마나 환자의 입장에서 그들을 잘 이해하고 공감
    하느냐일 겁니다.

 

왜냐하면 의사의 권위와 힘은 환자에게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혹시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신다면 그런 시대는 반드시 오며, 이미 가까이 와 있습니다. 결국 모두가 인정하는 명의 탄생의 핵심에는 환자가 관여하게 됩니다. 환자에서 환자로 이어지는 직접적인 입소문이야 말로 명의가 탄생하는 마지막 단계일 겁니다. 엄청난 대중적 파괴력을 지닌 TV나 신문에 명의로 소개되는 것을 전투에 비유해 얘기한다면 공군의 폭격 정도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전투에서 최후의 승리는 보병이 고지에 깃발을 꽂아야 가능하듯, 결국 환자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명의가 되기 위해서는 의사가 환자 개개인을 현장에서 어떻게 대하고 만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dl     이런 측면에서 명의가 갖춰야 할 첫 번째 커뮤니케이션 조건은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입니다.

 

얼마 전 아내와 대학병원 산부인과를 함께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담당의사가 어떤 식으로 진료하는 
       지를 무의식 중에 관찰(?)하게 됐습니다.

 

뜻밖에도 아내와 제가 진료실에 들어가서 첫 번째 본 의사의 모습은 열심히 컴퓨터를 보며 자판을 두드리는 모습이었습니다. 앞서 진료를 본 환자의 처방을 입력하는 것인지, 아니면 아내의 진료 기록을 검색하는 중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첫 번째 건 낸 말 역시 눈도 제대로 맞추지 않은 채 의자를 돌리며 어떻게 오셨죠?”라고 기계적으로 던진 말이었습니다.

 

하루에 100명 이상의 환자를 봐야 하는 어려운 상황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했다면 이전 환자의 처방을 마무리하고, 진료실에 들어서게 될 환자의 기록을 확인한 후 안정된 모습으로 환자를 맞이하는 것이 맞는 수순이었을 겁니다. 컴퓨터가 아닌 환자를 응시하는 불과 몇 초간의 첫 번째 만남에 대한 배려로 환자는 의사로부터 충분한 관심을 받고 있다고 느낄 것이며, 이는 환자가 의사를 신뢰하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다음은 오픈 형식의 질문에 익숙해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라도 의사는 충분히 환자의 말을 들어줘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 아니오를 유발하는 막힌 질문이 아니라, 자신의 현재 상태를 충분히 꺼내 놓을 수 있는 오픈 형식의 질문을 해야 합니다. 환자가 충분히 자신의 상태를 풀어 놓을 수 있게 되면, 정확한 진단을 위한 더 많은 단서들을 찾아 낼 수 있게 됩니다. 이는 질문 자체로서의 의미와 정확한 진단 차원을 넘어서 들어주는 것 만으로도 때로는 치료가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주요한 환자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가능하다면 진료실 밖에서도 환자와의 커뮤니케이션 기회를 넓히는 기회를 만드는 것도 필요합니다. 살인적인 진료와 수술 스케줄에도 실력은 물론이고 환자를 따뜻하게 돌보기로 유명한 의사들은 자신이 치료했던 환자들을 위한 소규모 모임을 만들어 그들과 소통하는 기회들을 많이 갖습니다. 좀 더 적극적인 분들은 아예 환자들과 함께 환우회를 만들어 함께 고통을 나누기도 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짧은 소식지를 내거나, 온라인 상담 코너를 개설해 환자와 지면으로 온라인으로 이야기를 나누려고 노력합니다. 이는 진료실 내에서는 환자들과 충분히 커뮤니케이션 하기 힘든 국내 진료환경에서 환자들과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환자들이 의사를 무한 신뢰하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미디어, 즉 언론을 충분히 활용하라는 것입니다. 미디어는 꺼릴 대상이 아니라 나와 내 환자들을 도와줄 훌륭한 조력자가 될 수 있습니다. 실력이든 혹은 남다른 환자 사랑이든 내게 자랑할 것이 있다면 적극 알리십시오. 미디어에 얼굴을 자주 내미는 것이 학자로서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미디어를 통해 내가 치료해야 할 더 많은 환자들과 대화한다고 생각하십시오. 과장된 홍보는 언제든 부작용을 낳게 되지만, 진정성과 실체가 있는 홍보라면 나를 허울뿐인 언론 명의가 아닌 훌륭한 실력과 따뜻한 환자 사랑의 감성을 가진 진정한 명의로 만들어 드릴 겁니다.

 

위에 몇 가지 제시한 명의의 커뮤니케이션 조건은 기본적으로 시간 투자를 요구합니다. 진료다 수술이다 바쁜 데 그럴 새가 어디 있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연구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겠다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그 친구 의대에서는 나 보다 훨씬 못했는데 감히 명의라니, 미디어가 만든 허상이야하며 말도 안 된다고 부정하거나 질투의 눈으로 보시는 분 들도 계십니다. 세상에 그냥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명의라는 단어에 대한 의료계 내의 호불호(好不好)와는 관계없이 실력을 갖추고 대중적으로도 명의로 불리는 대부분의 분들은 많은 시간을 환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커뮤니케이션에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시간을 투자한 분들입니다. 실력이든 환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든 명의로 불릴 만한 노력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대한민국에 실력과 환자와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두루 갖춘 더 많은 명의들이 탄생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