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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Enzaim Insight/Enzaim Report

잘 지은 이름 하나가 주는 힘

by Enzaim 2011. 6. 28.

헬스중앙에 기고한 브랜드 네이밍(brand naming)에 대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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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님의중에서

 

브랜드명, 즉 상품이나 회사, 개인, 심지어 병명(病名) 이름은 항상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시작점이 됩니다.

 

다양한 성공 사례들을 통해 기발한 네이밍 기법들이 강조되곤 합니다. 짧고(Short), 강하고(Strong), Simple(간단한), 소위 3S가 네이밍의 법칙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흥행을 하려면 영화제목이 3글자인 것이 좋고, 드라마는 5글자여야 한다는 대세론을 펼치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모두 지극히 맞는 말들입니다. 복잡하고 약한 것 보다는, 짧고 강하고 간단한 것이 효과적인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기억하고 발음하기 좋도록 3글자, 5글자 형태의 제목이 좋을 수 있는 것도 지당합니다. 하지만 위에 제시한 법칙을 따르지 않고도 성공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긴 이름임에도 히트를 친참나무통맑은소주나 다소 발음하기 힘든로 첫 음()을 시작했음에도 고급 아파트의 대명사가 된래미안(來美安)’의 성공은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성공한 브랜드 네이밍에는 아주 현실적이고, 단순한 이유가 있습니다. ‘본질노출량’, 그리고 '시간입니다. 브랜드 네이밍 작업은 히득한 단어 몇 개 찾아내는 작업이 아니라 철저히 전략적 사고의 과정입니다. 핵심 컨셉을 도출해 내고 이를 표현하는 통상적인 전략 작업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혹여 앞뒤 순서가 바뀌어서 그럴듯한 단어가 먼저 생각 났다고 하더라도 해당 브랜드 전략과 대입해 맞지 않는다면 그 이름은 무용지물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 일에는 본질이 있게 마련입니다. 브랜드 이름을 만드는 작업 역시 그럴 듯한 기교나 예쁘고 멋있는 조어 보다는 마땅히 불러줘야 할 사물의본질을 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본질을 고스란히 담은 이름은 소비자들에게 그만큼 쉽고 강하게 각인되겠죠.

 

많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이 의도적(?)으로 부정할 수도 있지만, 아주 현실적으로 브랜드의 친근감과 성공은 많은 부분 물량, 즉 노출 빈도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듯한 브랜드 네임이나 광고를 만들어도 노출량, 즉 도달률이 낮으면 기억되기 쉽지 않습니다. 대형 통신사나 대기업의 그야말로 뻔한 광고나 네이밍도 맨 처음에는 어색하다가도 나중에는 친근해 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버거씨병 등 생소하고 어려운 외래어 형태의 병명 조차도 다양한 계기로 자주 언급되고, 노출량이 늘어나게 되면 해당 병명에 대한 대중의 인지도가 올라갈 수 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물량의 중요성이 역설적으로 근본을 제대로 꿰뚫는 좋은 네이밍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해 준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기업이나 병의원들은 초대형 기업들만큼 자본이 넉넉하지가 않습니다. 적은 노출에도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 잡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제대로 된 네이밍은 더욱 중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음 단계로는 브랜드를 위한 일관되고 지속적인시간 투자입니다. 만약 자본이 부족해 단기간에 많은 양의 노출을 할 수 없다면시간이라는 위대한 자본이 있습니다. 인내를 갖고 지속적인 노출과 브랜드 관리를 꾸준히 해 나간다면 투자한 시간만큼 값진 브랜드 이름을 얻게 될 것입니다. 방향을 잡지 못한 대량의 노출 물량보다, 적지만 일관되고 꾸준한 브랜드에 대한 시간 투자는 종국에 투입된 시간만큼의 큰 힘을 가진 브랜드가 되어 되돌아 오게 됩니다.

 

네이밍의 중요성은 의료계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의료계야말로 어느 분야보다 네이밍에 둔감한 것 같습니다. 최근 톡톡 튀는 병원명들이 많이 나오긴 했지만, 아직도 출신학교의 이름이나 지명을 딴서울/연세/성모/00의원등의 이름이 난무하고 안과만 보더라도밝은, 맑은이나성모라는 이름을 딴 병의원이 너무도 많아 혼란스러울 정도입니다.

 

지난해 전 세계를 떠들썩 하게 했던 ‘H1N1바이러스(신종플루)’ WHO로부터 정확한 이름을 얻기 전 까지 돼지독감(Swine Influenza, SI)으로 불리면서 잘못된 이름 하나로 애꿎은 양돈농가들이 큰 피해를 입게 된 적도 있었습니다.

 

의료계의 병명(病名)도 논란이 될 만한 소지가 많습니다. 사실 현재 통용되는 많은 병명들은 대부분 의료진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들어 졌다는 인상을 지우기가 힘듭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병명은 대중이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이나, 섬유근통증후군(FMS), 하지불안증후군(RLS) 등과 같은 이름을 통해 과연 환자나 대중은 얼마나 제대로 해당 병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까요?

 

최근 대한정신분열병학회에서는 관련단체 및 기관들과의 협의를 통해 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지목된정신분열병이라는 병명을조현병(調絃病)’으로 바꾸기로 결정했습니다. 조현(調絃)현악기의 줄을 고른다는 의미로 정신분열병이 주는 부정적 어감과 의미를 없애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입니다.

 

조현병이라는 병명은 정신분열병에 대한 편견을 없앤다는 본래 목적과 그 조어의 기발함 등 모든 면에서 멋진 선택으로 보이지만, 대중들이 조현병을 예전의 정신분열병을 대신한 이름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데는 학회의 엄청난 노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새로운 이름이 주는 생소함을 다양하고 지속적인 홍보활동으로 관련단체와 대중에게 이해 시키고 알려나가는 시간에 대한 투자가 뒤따르지 않는다면조현병이라는 병명은 그저 의료진과 환자단체들만을 위한 생명력 잃은 용어로 머물게 될 것입니다.

 

학회의 병명(病名), 경영하고 있는 병의원의 이름이, 혹은 판매하고 있는 의약품의 이름이 과연 실체와 본질을 제대로 표현해 주고 있는 지 살펴보십시오. 자본과 물량이 부족해도 관계없습니다. ‘시간이라는 위대한 자본을 일관성 있게 지속적으로 본질을 알리는데 투자한다면 당신도 멋진 브랜드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엔자임 김동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