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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Enzaim Life/Enzaim Culture

[2008] 지각했니? 시 외우거라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4. 11.

** 2008년 손수지 대리님이 올린 글입니다.

얼마 전 신문기사에서 한 중학교에서 지각생에게
시를 외우게 하는 벌을 준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때리거나 벌을 세우는 대신 시를 외워라
참으로 '아름다운 고통'이 아닐 수 없네요.

학창시절을 지난 이 후 소리내어 시를 읽어 본 일이 없는 것 같은데요.
내리쬐는 봄볕에 A학점 쯤 주고 싶은 요즘 기분을 살려
소리내어 읽고 싶은 시 한 편을 소개하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랑의 빗물 환하여 나 괜찮습니다 -김선우

그대 만나러 가는 길에
어여쁜 풀여치 있어 풀여치와 놀았습니다
분홍빛 몽돌 어여뻐 몽돌과 놀았습니다
잘디잔 보랏빛 총총한 꽃마리 어여뻐
사랑한다 말했습니다 그대 만나러 가는 길에
흰사슴이 마시고 숨결 흘려놓은 샘물 마셨습니다
샘물 달고 달아 낮별 뜨며 놀았습니다
새 뿔 곱게 올린 사향노루 너무 예뻐서
슬퍼진 내가 비파를 탔습니다 그대 만나러 가는 길에
잡아주고 싶은 새들의 가녀린 발목 종종거리며 뛰고
하늬바람을 채집하며 날갯짓하는 나비떼 외로워서
멍석을 펴고 함께 놀았습니다 껍질을 벗는
자작나무 진물 환한 상처가 뜨거워서
함께 가락을 놀았습니다 회화나무 명자나무와 놀고
해당화 패랭이꽃 도라지 작약과 놀고
꽃아그배나무 아래 낮달과 놀았습니다
달과 꽃을 숨구멍에서 흘러나온 빛 어여뻐
아주 잊듯이 한참을 놀았습니다 그대 잃은지 오래인
그대 만나러 가는 길
내가 만나 논 것들 모두 그대였습니다
고단함을 염려하는 그대 목소리 듣습니다
나, 괜찮습니다
그대여, 나 괜찮습니다

저희도 지각하면 시 한 편씩 읊고 가는 것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