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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Enzaim Insight/Enzaim Report

[2008][경향신문]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멀티 플레이어 ‘홍보맨’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4. 27.
ㆍ기업 홍보맨에 대한 오해와 진실

■김지중 차장(36)

육군 소대장 출신의 보수적인(?) 증권맨. 경찰 할아버지와 교사 아버지 밑에서 예의범절을 배웠다. 입사 후 증권, 보험 관련 자격증만 9개를 딴 학구파. 대화 도중 해박한 금융지식으로 상대를 놀라게 한다.

■이희주 실장(45)

대학시절 정식 등단한 시인. 화제가 됐던 ‘한국인’ 광고는 그의 시적인 상상력이 결합된 작품이다. 한번 마음먹으면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격. 접대를 위해 시작한 골프지만 티칭프로 자격을 딸 경지에 이르렀다.

■노순석 전문(56)

홍보 경력 24년차 베테랑. 지금까지 취재에 응했던 기자가 줄잡아 2500명. 한 달에 챙겨야 할 전·현직 기자의 애경사만 10건 안팎. 큰딸(25)보다 어린 기자들도 있지만 언제나 ‘기자님’ 앞에서는 고개를 숙인다.

■문춘근 차장(40)
증권가 홍보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야심가. 같은 회사 임원을 지낸 장인이 영업직을 권했지만 꿋꿋하게 홍보맨의 길을 가고 있다. 대학 응원단장 출신이지만 화려한 춤 실력을 볼 기회는 1년에 한두 번뿐이다.

■송기종 대리(36)

기자사이에서 ‘부장급’ 대리로 평가받는 증권가의 마당발이자 의리맨. 회사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양말 한 짝만 신은 채 달려나올 만큼 열정적이다. 귀가해서는 설거지와 청소를 도맡을 정도로 가정적이다.


“그 곳에 가면 특별한 사람들이 있다.”

증권사가 몰려 있는 서울 여의도. 주식을 사고파는 주식시장은 촌각을 다투는 전쟁터와 같다. 같은 가격에 주문을 냈다면 시간 우선 원칙에 따라 먼저 낸 주문이 체결된다. 증권선물거래소의 매매시스템은 100분의 1초 단위로 주문을 접수한다. 0.01초 차이로 많게는 수억원의 손실과 이익이 오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기자들에게 증권계는 삭막한 취재처로 불린다. 주식시장을 담당하던 기자가 출입처를 바꾼 3일 뒤면 취재원에게 잊혀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주문 후 3일 뒤 결제가 이뤄지는 주식거래 시스템의 특성에 빗대 그만큼 빨리 잊혀진다는 뜻이다. 반면 은행은 정기예금 기간과 같은 1년, 장기 상품이 많은 보험은 10년간 기자와 취재원의 친분관계가 이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홍보실은 증권사 안에서 ‘섬’ 같은 곳이다. 기계적이고 차가운 분위기 속에서 인간미 풍기는 정을 느끼게 하는 부서이기 때문이다. ‘독수리 5형제’가 지구를 지킨다면 한국투자증권에는 ‘홍보맨 5인방’이 있다. 한 사람씩 떼놓고 보면 한결같이 개성이 강해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다섯 남자를 조합하면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낸다. 한국투자증권이 비교적 이른 시일인 통합 2년여 만에 정상권 증권사로 자리잡은 것도 이들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는 평가다.

기업 홍보실을 무대로 한 드라마나 영화가 많이 있었다. 수년 전 히트했던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는 남자 주인공(박신양)이 여자친구(김정은)를 자신의 회사 홍보실에 취직시켰고, 최근 방영중인 ‘행복합니다’에서는 재벌가의 딸(김효진)이 신분을 속이고 홍보실 직원으로 근무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래서 홍보실에는 ‘특채’로 내려온 최고경영자(CEO)의 친·인척이 즐비한 것으로 인식돼 있다.
홍보 업무가 비교적 전문성이 떨어져 ‘아무나’ 갖다놔도 일할 수 있는 부서로 여겨진 탓이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홍보에 대한 전문성이 점차 강조되고 있고, 폭넓은 안목과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떨어진다면 절대 훌륭한 홍보맨이 될 수 없다. 최근 몇년 새 대기업 임원 가운데 홍보부서 근무 경력자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홍보부서를 지원하는 이들도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증권사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는 증권가에서는 최근 홍보맨 스카우트전이 예고돼 있기도 하다.

환상적인 조합을 이루고 있는 한국투자증권 홍보실의 5명을 통해 잘못 알려진 홍보맨의 실상과 그 세계를 들여다봤다.

■ 두주불사형(×)·사교성(○)=28년 직장생활의 대부분을 홍보부서에서 근무한 노 전무는 체질상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 김 차장도 소주 한 잔에 얼굴이 붉어진다. 한 자리에서 폭탄주 수십잔을 거뜬히 해치우는 술고래만 홍보맨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술자리를 피하지는 않는다. 술은 잘 못해도 분위기를 흥겹게 만들 수는 있기 때문이다. 송 대리는 “예전에는 술자리를 통해 기자와 홍보맨의 관계가 끈끈해지는 일이 많았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면서 “업무와 관련된 정보나 전문지식이 술보다 훨씬 큰 효과를 낸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기자와 업무상 만난다는 느낌을 주기보다는 신뢰를 바탕으로 인간적으로 접근한다는 인상을 줘야 한다”면서 “업무에 관한 일은 만남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차장은 “홍보맨이 갖춰야 할 친화력과 사명감, 애사심 등 세가지 가운데 첫번째 덕목은 친화력”이라고 강조한다. 붙임성이 좋고 적극적인 성격이어야 홍보맨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 전문성이 모자란다(×)=그렇다면 유능한 홍보맨은 어떤 사람일까. 노 전무는 △고객과 언론의 욕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사안에 대해 신속히 대처할 수 있으며 △조직 내부의 상황에 정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속한 회사는 물론이고 업계 현황에 대해서도 정확히 꿰고 있어야만 주된 상대방인 기자를 설득하고 이해시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노 전무가 꼽는 우리나라 최고의 홍보맨은 삼성그룹 전략기획실 이순동 사장이다. 탁월한 분석력과 상대를 설득시키는 능력이 최고라는 평가다.

영업점에서 6년간 근무했던 김 차장은
“좋은 박스기사 하나가 전면광고보다 효과가 크다”고 말한다. 고객에게 “우리 회사 상품이 여기 광고로 나왔다”는 것보다 “언론에서 이렇게 평가했다”는 설명이 훨씬 설득력 있기 때문이다. 기자를 설득하려면 홍보맨이 먼저 전문가가 돼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문 차장은 “홍보맨은 인맥을 넓히고 폭넓은 지식을 습득하는데 더할 나위 없는 보직”이라면서 “유능한 홍보맨으로 평가받았다면 회사내 어떤 부서에 배치하더라도 제 몫 이상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노는 시간이 많다(×)=홍보실 직원들은 가끔 낮술을 먹고 오후 2시쯤 불콰한 얼굴로 사무실에 들어올 때가 있다. 동료들에게 “거기서는 술도 맘대로 먹고, 주말이면 골프도 칠 수 있으니 좋겠다”고 비아냥 섞인 얘기를 듣기도 한다. 문 차장은 “현실을 너무 모르는 얘기”라고 잘라 말한다. 내부에서조차 명백한 홍보업무를 노는 것으로 치부하는 듯한 분위기가 있는 것이다.

송 대리의 출근 시간은 오전 6시30분이다. 배달된 김밥으로 아침식사를 때우고 오전 8시까지 조간신문 주요 기사를 스크랩한다. 그날 예정된 일정과 행사를 점검하면 기자실에 기자들이 출근하기 시작해 송 대리를 찾는다. 오전 미팅이 끝나면 벌써 점심시간. 구내식당에서 뚝딱 해치우고 싶지만 대부분 기자들과의 약속이다. 사무실에 다시 들어오면 석간신문 스크랩이 기다리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시황과 뉴스를 체크하는 사이 회사전화와 휴대전화, 메신저를 통해서는 수십명의 기자들에게 각양각색의 주문을 받아 처리해야 한다. 오후 7시쯤이면 내일자 조간신문 가판이 도착해 또 스크랩이다. 1주일에 3차례 정도는 술이 곁들여진 기자들과의 저녁이다. 파김치가 돼 집에 들어가는 시간은 자정을 넘기기 일쑤다. 아내, 두 딸과 함께 보낼 시간이 늘 부족하다. 주말이면 설거지와 청소, 놀아주기로 면피하지만 늘 미안한 생각이다. 홍보실로 부서를 옮긴 뒤 친구들도 많이 떨어져나갔다.

■ 경영진의 측근이다(○)=홍보맨은 ‘기업의 입’이다. 사안 발생시 회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맡는다. 최근 일부 정부부처에서 공보관 직책을 대변인으로 바꾼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려면 회사 돌아가는 사정을 훤히 알아야 하기 때문에 임원들이 참석하는 주요 회의에 빠짐없이 참석한다. CEO를 직접 대면하는 일도 잦다. 노 전무는 “회사의 사업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미래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줄 알아야만 유능한 홍보맨”이라고 설명했다.

CEO를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특성상 홍보맨들의 충성도는 남다르다. 실제로 회사가 곤경에 빠졌을 때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뛰어들어 자신이 무거운 짐을 졌던 홍보맨도 적지 않다. 기자들은 홍보맨을 통해 그 회사를 본다. 홍보맨이 성실하고 똑똑하면 그 회사에 좋은 인재가 많아 미래가 밝을 것이라고 예단하는 것이다.

■ 항상 ‘을’의 입장이다(×)=회사와 관련해 좋든 싫든 기사를 쓰는 것은 기자다. 양자의 관계에서 홍보맨이 을의 위치에 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 차장은 “홍보맨이 기자와의 관계에서 ‘을’의 지위를 버리는 순간 사적인 자리가 된다”면서 “기자들과는 술 먹는 자리에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차장이 홍보실에 와서 가장 크게 놀란 것은 기자를 대하는 선배들의 자세였다. 평소 근엄하게 보이던 40대 중반 간부가 새파란 20대 기자 앞에서 긴장하고 경직된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혈기왕성한’ 홍보맨과 ‘건방진’ 기자 사이에 간혹 충돌이 빚어지기도 하지만 서로 쉬쉬하면서 넘어가는 게 보통이다.

홍보맨이 언론사를 상대로 칼자루를 쥐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 홍보부서에서 광고 발주까지 맡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언론사 수입에서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어서 홍보맨들을 접대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 언론사 광고부서에서는 광고 유치를 위해 홍보맨들을 세미나 명목으로 해외여행을 시켜주거나, 골프 접대를 하기도 한다. 홍보맨이 갑의 위치에 서는 상황이다.

■ 경력에 도움 안된다(×)=홍보맨을 소모품처럼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효용이 다했다고 판단되면 가차없이 내치는 사례가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홍보업무를 익힌 간부들이 임원으로 승진하는 사례가 두드러지고 있다. 노 전무는 “기업과 소비자의 통로 역할을 하는 홍보의 역할이 훨씬 중요해지는 추세”라면서 “기업의 가치를 상승시키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는 홍보맨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를 옮기는 일이 흔치 않았던 증권가 홍보맨들도 최근 엉덩이를 들썩거리고 있다. 신설 증권사 13곳이 다음 달쯤 예비인가를 받을 예정이고, 인수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운 증권사도 있어 홍보맨들이 자리를 옮길 기회가 널려 있는 셈이다. 단기간에 회사를 널리 알려야 할 신설 증권사로서는 폭넓은 언론계 인맥을 갖고 있는 홍보맨을 스카우트 하는 게 시급한 실정이다. 현직이 아니라도 좋으니 과거 홍보실에서 근무했던 직원을 스카우트 하겠다는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호기기자>


임원 승진 고속도로 ‘홍보팀’…위기관리 중요성 부각 따라 달라진 위상

최근 기업의 위상 강화와 위기 관리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홍보맨들의 약진이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진행된 이번 인사 시즌에도 홍보맨들의 도약은 두드러졌다.

기아자동차는 지난달 열린 주주총회에서 김익환 부회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김 부회장은 2000년 기아차 홍보실장과 국내영업본부장을 지낸 후 2005년 기아차 사장을 역임한 대표적인 홍보·영업맨. 회사를 떠나 있다가 지난해 10월 기아차 총괄부회장으로 복귀한 김 부회장은 기아차 업무를 총괄하는 최고경영자(CEO) 자리까지 올랐다. 27년간 에쓰오일 홍보를 책임져온 김동철 부사장은 지난 2월 관리담당 수석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에쓰오일에서 수석부사장은 대주주인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에서 파견된 CEO를 제외하면 최고위직이다.

포스코 김상영 홍보실 담당 상무도 지난 2월 정기 임원인사에서 전무로 승진했다. 김 전무는 2001년 4월 홍보실장을 맡으며 홍보와 인연을 맺은 뒤 업계 최전선에서 맹활약해왔다. 지난해 말에는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조원용 아시아나항공 이사와 장영호 LS전선 이사가 각각 상무로 한 단계씩 올라섰다.

승진뿐만 아니라 업무영역을 넓혀 중책을 맡게 된 실세 홍보맨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정상국 LG그룹 부사장은 LG전자 홍보를 전명우 상무에게 맡기고 그룹의 브랜드 및 이미지 관리를 총괄하는 브랜드관리팀장을 맡았다. SK그룹의 권오용 전무도 그룹 브랜드관리실장과 함께 SK텔레콤 홍보를 겸임하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도 홍보맨들의 약진은 두드러진다. 지난 1일 승진한 한국투자증권 노순석 전무가 대표적. 노 전무는 1984년 LG데이콤에 입사해 홍보일을 시작한 이후 팬택그룹과 한국증권 등에서 24년간 홍보만 전담했다. 푸르덴셜증권 이재환 상무와 미래에셋증권 변재상 상무, 대우증권 김진걸 상무, 대신증권 조경순 이사 등도 모두 홍보팀장에서 임원으로 승진한 케이스. 증권업계의 경쟁이 나날이 치열해지면서 상품 개발뿐만 아니라 판매를 위한 광고와 홍보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은행권에서는 올해 초 국민은행 임영식 홍보부장이 전략본부장으로 올라섰고, 신한은행에서도 윤용진 홍보실장이 개인고객그룹 영업본부장으로 승진했다.

한 그룹 관계자는 “
기업 이미지 제고라는 인식은 물론이고 과거에는 기업들이 홍보의 중요성을 크게 인식하지 못했지만 기업의 도덕성 문제 등 여러 차례의 파문을 겪고 나자 홍보의 위기 관리 역할을 중요시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면서 “홍보가 중요해진 만큼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홍보 라인으로 배치되고 인사에서도 고속 승진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최근 기업의 발과 입 역할을 하는 홍보맨의 역할이 커졌다는 기사입니다. 박스기사 전면 광고보다 낫다는 말, 인상 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