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_Enzaim Work/PR & Digital

'위협'과 '배려' 사이..간염광고 논란과 헬스커뮤니케이션

by Enzaim 2011. 4. 5.

B형 간염을 소재로 한 대한간학회의 TV공익광고가 논란입니다. 문제가 된 것은 눈에 심한 황달이 오고 복수가 찬 말기 환자의 모습을 너무 무섭고 끔찍하게 묘사한 부분입니다. 간사랑동우회 등 환우회 사이트에는 간염 환자들을 공포에 몰아넣는 광고라며 성토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가뜩이나 차별 받고 있는 간염 환자들에 대해 일반인들의 차별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논란을 떠나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만 보면 이 광고는 환자들에게 필요한 메시지이며, 효과적이기까지 합니다. 일어날 지도 모르는 부정적 결과를 표현하고, 뒤 이어 부정적 결과를 모면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제시해 설득 및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는 위협 소구(Fear Appeal)’의 대표적 형태죠. 위협 소구는 금연, 에이즈, 음주운전 캠페인 등 주로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커뮤니케이션 활동에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광고에서 뿐만 아니라 PR에서도 위협 소구가 자주 등장합니다. 미디어의 건강 기사를 유심히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각종 질병통계 및 예방 메시지에 유난히 위험’ ‘사망’ ‘심각’ ‘급증등의 단어들을 많이 보셨을 겁니다. 이 또한 위협 소구의 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효과적인 위협 소구, 신중한 접근 필요

위협에 자유로울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생명과 건강에 대한 위협엔 더 민감할 수 밖에 없어 위협 소구는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런 위협 소구를 적용할 때는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첫째는 제시된 위협적인 상황이 자신에게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믿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위협적인 메시지 개발에만 몰두하다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들이 많이 간과하는 부분이죠. 담배 포장지에 흡연으로 인해 망가진 폐 사진이나 썩은 치아 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일까요? 담뱃값 인상과 함께 이와 같은 흡연의 폐해를 극대화해서 보여주는 위협 소구가 효과적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 위협 정도가 너무 지나치면 오히려 효과는 떨어지게 됩니다. 너무 지나치고 과장된 담배광고는 흡연자로 하여금 그런 일은 나에게는 안 일어날 거야. 그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라는 회피현상을 유발해 금연 행동을 유발하는 데 오히려 별 효과를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비유적 표현보다는 직접적인 표현이 금연 행동유발에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몇 해 전 흡연이 스스로를 학대하는(자학) 행동이라는 컨셉으로 재미있는 상황을 표현한 광고가 있었습니다. 흡연은 머리를 스스로 쥐어 박는다거나, 하수구 통에 머리를 집어 넣는 등의 자기 학대행위와 다르지 않다는 메시지입니다. 아이디어의 신선함과 기발함으로 대중에게 많이 회자되고 멋진 광고로 사랑 받긴 했지만 과연 광고의 궁극적인 목적인 흡연자들에게 금연행동을 유발하는 데 효과적이었을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습니다. 오히려 흡연, 심지어 간접흡연조차도 아이들의 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는 식의 흡연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점, 혹은 현실 생활과의 밀접한 연관성을 강조하는 것이 지나치게 가학적이고 엽기적인 광고보다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요?

 

관계(Relationship)를 고려한 상황 예측 중요

또 하나의 중요한 고려사항은 커뮤니케이션 전략이나 메시지 도출 시 관련공중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배려가 필요합니다. 이번 간염 광고는 이런 점이 간과돼 예방을 위해 꼭 필요한 메시지이고 효과적인 전략임에도 논란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충격(Impact)요법은 PR이나 광고에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상황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충격요법은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모 대기업이 자사의 명동 의류매장에서 치마길이가 짧을수록 할인율을 높게 적용해 주는 행사를 기획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취소한 사례나, 수년 전 모 발기부전 치료제를 프로모션하면서 상호작용이 가능한 의사 교육용 CD를 만들면서 너무 선정적인 용어와 모델을 사용해 곤혹을 치른 예는 한국의 문화적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충격요법과 아이디어에만 집착했기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 간염광고 역시 B형 간염 조기검진과 치료가 가져다 주는 중요성을 통해 환자들의 건강을 지키려는 학회의 선의(善意)가 엿보입니다. 문제는 제작과정에서 관계공중의 예상 반응에 대한 충분한 배려가 없었던 것이 아쉽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은 기본적으로 관계(Relationship)’의 예술입니다.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헬스 커뮤니케이션에서는 관계가 더욱 중요합니다. 그래서 어렵고 또 신중해야 합니다. 너무 가벼워도 너무 무거워도 안 되는 전문분야가 바로 헬스 커뮤니케이션 분야입니다.

 

간사랑동우회에서는 이번 광고 이슈를 다루며 한참 뜨고 있는 우루사 광고와 B형 간염 광고를 비교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환우회의 주장에 의하면 만성적인 피로감은 생활습관의 잘못이나 여러 가지 질병의 증상일 수 있고, 때로는 특별한 이유 없이 심한 만성적인 피로를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더욱이 간질환은 악화되더라도 증상이 없기 때문에 피곤함을 느끼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죠. 그럼에도 우루사 광고는 피로의 원인이 간 때문이라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강조함으로 인해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우려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의학적 판단의 옳고 그름의 문제는 별개로 하더라도 대한간학회의 간염광고는 좋은 내용을 잘못 전달했고, 대웅제약 광고는 잘못된 내용을 너무 잘 전달했다는 환우회에서 남긴 마지막 문장이 인상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