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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Enzaim Work/Design

<헬스케어 디자인> 녹색 자연에서 안정을 찾다, 바이오필릭 디자인

by Enzaim 2022. 5. 23.

 


우리는 늘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지만, 우리가 결국 편안함을 느끼고 지친 일상을 위로받는 대상은 자연이다. 카페에 들어서는 동시에 햇볕이 잘 드는 창가 자리를 스캔하고, 여행지에서 숙소를 선택할 때 비싼 돈을 주더라도 오션뷰를 선호하는 이유도 더 많은 자연을 느끼기 위해서다. 현대의 찰스 다윈으로 평가받는 세계적인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이것을 ‘바이오필리아(Biophilia)’라고 개념화했다. 바이오(Bio)는 자연과 생명체, 필리아(Philia)는 사랑을 의미하여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연을 사랑한다는 개념이다. 즉 바이오필릭 디자인은 인간의 자연을 향한 본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디자인 행위, 친환경적 설계라 할 수 있다.

바이오필릭 디자인 분야로 저명한 컨설팅 업체인 ‘테라핀 브라이트 그린(Terrapin Bright Green)’은 바이오필릭 디자인 방법론으로 다음 사항을 언급하고 있다. 첫째로, 직접적으로 자연을 경험하게 하는 방법이다. 그늘진 나무, 꽃이 만발한 식물, 위협적이지 않은 동물 등 실제 자연을 바라볼 수 있게 하고 흐르는 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은은한 꽃향기, 바람과 같은 자연적 요소를 통해 오감을 자극하는 것이다. 둘째로, 간접적으로 자연을 경험하게 하는 방법이다. 자연의 형태, 비율, 질감을 모방한 이미지를 사용하거나, 자연에서 찾을 수 있는 색상을 적용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간이 자연에 가지는 본능을 유도하는 방법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관찰, 조망이 가능한 탁 트인 전망을 선호하며, 반대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은신처 같은 공간을 원한다. 이러한 특성을 고려한 디자인 설계를 통해 사람들의 동선을 유도하거나 보호, 휴식 등의 기능을 제공하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시대를 겪으며 사람들은 자연으로 한 걸음 회귀했다. 인구가 밀집한 도시 속 감염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려 드넓은 자연을 찾아 나서며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산에 오르고, 한적한 숲속으로 캠핑을 떠났다. 또 재택근무가 확산되며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집 안 곳곳에 싱그러운 식물을 두어 인테리어에 포인트를 주는 ‘플랜테리어(Planterier)’와 옥상과 베란다에 텃밭을 가꾸며 심리적, 정서적 안정을 찾는 ‘홈가드닝(Home Gardening)’도 지속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바이오필릭 디자인은 이러한 자연친화적 트렌드와 맞물려 성장하고 있다.

이번 헬스케어 디자인 포스팅에서는 건축, 인테리어, 도시 등의 공간에 도시화로 인한 자연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투영된 바이오필릭 디자인을 적용한 사례들을 소개한다.



도시 전체가 정원인 나라, 싱가포르
바이오필릭 시티는 바이오필리아 사상을 기반으로 하여 도시 내 사람의 물리적 환경에 자연과의 접근성을 높이는 도시계획 방법론이다. 도시 내 자연 인프라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생명체와 사람이 공존하는 도시의 모습을 제안한다. 자연환경을 고려한다는 점에서 녹색도시, 친환경 도시와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기존의 개념들은 주로 저탄소, 에너지 절감 등의 물리적 특성을 다루는 반면에, 바이오필릭 시티는 사람들의 삶과 질, 생태계와의 조화에 초점을 둔다.

싱가포르는 전 세계적으로 바이오필릭 시티의 흐름을 선도하고 있다. 서울 면적의 1.2배 정도밖에 되지 않는 제한적인 국토에서 상당한 도시화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공공녹지비율은 36%에서 48%로 증가하였다. ‘도시 전체를 정원으로 구성한다(City in a Garden)`는 비전을 도시계획의 목표로 삼아 공항, 호텔, 도심, 교량 등을 자연과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바이오필릭 시티를 완성해 가고 있다.


인간의 기술력과 자연이 만나다, 가든즈 바이 더 베이(Gardens by the Bay)

가든즈 바이 더 베이의 슈퍼트리 그로브와 스카이웨이 &copy;Gardens by the Bay



지난 2012년 개장한 가든즈 바이 더 베이는 유기적 에너지 순환을 중점으로 설계된 세계 최대 규모의 식물원으로 싱가포르의 상징적인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영화 아바타 속의 나무들을 떠올리게 하는 50m의 높이에 달하는 18그루의 인공나무, 슈퍼트리이다. 슈퍼트리의 윗부분에는 태양열 전지가 설치되어 있어 낮에는 열을 흡수하고, 밤에는 얻은 에너지로 불을 밝히어 아름다운 야경을 연출한다. 비가 오면 빗물을 저장해 두었다가 슈퍼트리 기둥에 더부살이하는 16만여 가지의 식물에게 수분을 공급하거나 식물원의 냉각수로 사용되어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한다. 겉모습만 나무인 것이 아니라 실제 나무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슈퍼트리 두 그루를 연결하는 128m 길이의 공중 산책로인 스카이웨이는 공원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실내에 무지개가 뜨는 주얼창이공항(Jewel Changi Airport)

주얼창이공항의 실내 인공 폭포인 레인 보어텍스 &copy;Jewel Changi Airport

 

세계에서 가장 높은 실내 인공 폭포인 레인 보어텍스(Rain Vortex)로 눈길을 끄는 주얼창이공항은 싱가포르 창이공항의 각 터미널을 잇는 환승 허브로, 단순한 항공 편의시설을 넘어 싱가포르만의 개성을 담은 창의적인 모델로 평가되고 있다. 건물의 중심부에 위치한 레인 보어텍스는 높이가 무려 40m에 이르러 1분에 약 37,800L의 물이 쏟아져 역동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폭포수는 빗물을 받아 재활용하는 것으로 건물의 실내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도록 설계되었으며, 쾌적한 공기의 흐름을 조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상공 25m 그물 위를 걸을 수 있는 스카이넷 &copy; Caad Design / 왼쪽부터 토피어리 산책로, 미로정원, 포기보울즈 &copy;Jewel Changi Airport

 

 

뿐만 아니라, 가장 상층부에 있는 테마공원인 캐노피 파크에는 25m 상공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는 스카이넷(Sky Net), 실제 동물의 크기를 형상화한 토피어리 산책로(Topiary Walk) 울타리로 이루어진 미로정원(hedge maze), 시원한 안개가 나오는 놀이공간인 포기보울즈(Foggy bowls), 등 남녀노소가 자연을 매개로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과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주얼창이공항은 24시간 개방되어 있어 여행객 뿐만 아니라 많은 일반 방문객들도 이용할 수 있다.

세상에 없던 백화점의 등장, 더현대 서울
우리나라에서도 바이오필릭 디자인을 적용한 사례가 있다. 작년 2월에 문을 연 더현대 서울은 개장 첫 주말에만 100만 명이 다녀가는 등 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단숨에 여의도의 핫플레이스로 등극했다. 백화점 개장이 이렇게 큰 이목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일반적인 관념 속 백화점의 형태는 사방이 막혀 있고, 매장으로 꽉꽉 들어찬 모습이다. 하지만 더현대 서울은 기존의 전통적인 백화점의 모습을 깬 새로운 점포의 모습이었다. 1층 입구부터 널찍하게 펼쳐진 통로와 6층까지 뻥 뚫린 천장은 실내라는 갑갑함을 날려버리기에 충분하다.

 

도심 속 초대형 실내 정원 사운즈 포레스트 &copy;더현대 서울
물이 고여 있는 수반에 인공 초목을 심어 감성적 느낌을 더한 워터폴 가든 ©더현대 서울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3층에서 1층까지 폭포가 떨어지는 워터폴 가든을 지나 사운즈 포레스트가 웅장하게 펼쳐진다. 사운즈 포레스트는 ‘도심 속 숲’을 모티브로 한 1천 평 규모에 달하는 초대형 실내 정원이다. 유리 천장에서는 자연 채광이 쏟아지고, 이너존과 아우터존을 연결하는 7개의 브리지가 모이는 광장에 대형 돔과 갖가지 꽃과 나무를 배치했다. 이와 함께 새소리, 물소리 등 자연의 소리가 나오는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어 실제 야외를 거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쇼핑을 하다 지친 사람들은 의자에 앉아 편안하게 휴식을 즐길 수 있다.

백화점이 매출 극대화를 위한 상품 판매 공간을 과감하게 줄이고, 전체 영업 면적의 절반을 실내 조경과 휴식 공간으로 꾸민 것은 파격적인 행보가 아닐 수 없다. 더현대 측은 단기적으로는 영업 면적이 줄어들어 손실이 예상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바라볼 때 고객의 경험을 강조한 지금의 설계가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는 지구의 자원은 한정적이며, 파괴된 환경을 예전과 같이 되돌리는 것에도 한계가 있음을 알고 있다. 이제는 도시와 자연을 대립구도로 설정하고, 떠나야할 공간으로 도시를 바라보는 것을 넘어 어떻게 하면 도시를 우리가 건강하게 살아나갈 수 있는 공간으로 가꾸어 갈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은 인간의 본능일 뿐 만 아니라 현대인의 삶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며 지속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는 솔루션이 될 수 있다. 앞으로도 더 많은 분야에서 다양한 생명체와 사람이 공존하는 바이오필릭 디자인이 적용된 모습을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