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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Enzaim Insight/Enzaim Report

[헬스케어 디자인] 오래된 도시에 건강한 활력을 불어넣는 문화·예술의 힘

by Enzaim 2021. 9. 27.

 

 

 

지구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며, 우리나라의 경우 무려 전체 인구의 91%가 도시에 살고 있다. 도시가 현대인의 보편적인 삶의 공간이 된 셈이다. 우리의 생활환경인 도시를 어떻게 건강하게 만들어가느냐는 그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도시도 사람처럼 세월의 흐름에 따라 노화와 쇠퇴의 시기를 맞이 한다는 것이다.

도시재생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 일자리 감소, 건축물 노후화 등으로 쇠퇴하는 도시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도시정책이다. 과거 도시정책은 낙후된 지역의 철거, 대규모 신도시건설로 이어지는 도시개발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하지만 이러한 개발 지향적 도시정책은 개발과정에서 지역의 원주민이 배제되거나 지역 고유의 문화가 사라지고 획일화되는 문제점이 있었다. 최근에는 대규모 신도시 위주의 도시개발에서 벗어나 소규모, 재정비 위주로 도시재생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 주민들이 실질적으로 향상된 생활환경을 체감할 수 있는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도시환경의 조성이 도시 재생의 핵심 가치가 된 것이다.

문화예술은 이러한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도시재생 사업에 있어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가치이다. 문화예술이 가진 가치와 긍정적인 영향력을 도시재생사업에 도입하여 지역이 가진 문화적 특색과 정체성을 구축해가고 주민공동체를 복원하는 성공사례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런 문화예술을 통한 도시재생은 한 도시의 영역을 넘어 국제적인 문화교류의 장으로 이어지며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번 헬스케어 디자인 포스팅에서는 오래된 도시에 건강한 활력을 불어넣는, 문화예술을 접목한 도시재생 사례를 살펴본다.

 

 

문화적 도시재생의 교과서, 스페인 빌바오

스페인 바스크(Basque) 지역의 중공업 도시 빌바오(Billbao)는 문화의 도시로 재생 사업에 성공한 뒤 연 100만 명 이상이 찾는 관광 도시가 되었다. ‘구겐하임 미술관’이 대표 상징물이지만 단순히 건축물이 성공 요인은 아니다. 경제적 불황과 대홍수로 인한 도심 복원을 위해 정부는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협회를 설립하고, 지방정부와 모든 정치 기관이 참여하여 도시발전 계획을 추진했다. 치밀한 연구를 바탕으로 기존의 철강산업기반이 아닌 문화 도시로 전환하는 방식을 결정했고, 도시의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으로 ‘문화적 가치’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도심을 가로지르는 네르비온 강변을 중심으로 문화공간과 수변공원을 조성하게 되었다. 그래서 빌바오에는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설계한 건축물들이 많다.

 

빌바오의 과거 모습. ⓒskyscrapercity.com
도시 재생사업으로 빌바오의 대표 명소가 된 구겐하임 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 홈페이지

 

구겐하임 미술관은 빌바오를 상징하는 대표 명소이다. ‘메탈 플라워’라고 불리는 은빛 티타늄이 눈에 띄는 미술관은 캐나다의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했다. 과거 우범지대 같았던 곳을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탈바꿈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1997년 개관 이후 40만 명의 방문객을 목표했으나, 코로나19 유행 전까지 100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았다. 이에 미술관 주변 지역경제가 살아나고 문화 산업이 발전하는 것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사람들은 이 현상을 ‘구겐하임 효과(Guggenheim effect)’라고 부른다.

 

버려진 와인 창고를 개조한 복합 문화 공간 '아즈쿠나 센터' 로비 천장으로 수영장이 보이는 구조가 눈에 띈다. ⓒ아즈쿠나 센터 페이스북

 

뿐만 아니라 버려진 와인 창고를 개조해 만든 복합 문화 공간 아즈쿠나 센터도 주목할 만하다. 프랑스 건축가 필립 스탁에 의해 ‘건물 안의 건물’을 컨셉으로 새롭게 탄생한 이곳은 로비에서 천장을 보면 수영장이 보이는 구조로 설계되었다. 내부에는 도서관, 전시 공간, 수영장, 음식점 등이 있어 지역 주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장소로 자리매김했다.

이외에도 노먼 포스터, 알바로 시자, 라파엘 모 네오, 자하 하디드 등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모여 도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공공의 리더십과 문화와 예술이 만나 재탄생한 빌바오는 관광하고 싶고, 살고 싶은 매력적인 도시로 바뀌었다.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과감한 문화·예술 투자가 낙후된 도시를 활력과 영감이 넘치는 도시로 바꾸는 역할을 한 것이다.

 

 

오래된 방직공장이 직조하는 새로운 문화 트렌드, 리스본의 엘엑스 팩토리(LX FACTORY)

엘엑스 팩토리 거리 전경 ⓒLisbonPortugalTourism.com

 

포르투갈 리스본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을 기준으로 연간 45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관광도시이다. 그 중에서도 엘엑스 팩토리는 리스본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꼭 한번 가봐야 할 장소로 추천되는 곳이다. 리스본의 관광 명소로 떠오른 이곳은 19세기의 공장 단지를 기반으로 한 복합 업무공간이자 쇼핑공간, 그리고 문화창작소다.

지금의 엘엑스 팩토리로 리모델링 된, 산업단지는 1846년에 조성된 이후 리스본의 방직산업을 대표하는 대규모 산업단지였다. 이후 포르투갈에서 가장 큰 인쇄소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관련 산업이 쇠퇴하며 드넓은 공장부지 역시 도심의 흉물처럼 방치되고 말았다.

버려졌던 산업단지에 변화가 시작된 건 지난 2008년부터다. 정부기관이 아닌 민간회사 ‘메인사이드(Main Side)’와 ‘코워크리스보아(Coworklisboa)’라는 커뮤니티가 방직공장을 거점으로 한 리스본의 도시재생을 위한 사업을 기획하고 사람들을 끌어 모았다. 이들이 내세운 엘엑스 팩토리의 정체성은 ‘터무니 없는 생각’들을 수용하는 공간.” 이에 낙후된 공장지대에 예술적 영감이 가득한 인테리어와 기발한 아이디어의 수공예품, 빈티지 소품, LP 음반 등을 파는 상점, 카페와 식당들이 모이게 된다.

 

오래된 인쇄소를 개조한 ‘레르 데바가르(Ler Devagar) 서점’ 조엔롤링이 해리포터 시리즈의 영감을 받은 곳으로 유명하다. ⓒ엘엑스팩토리 홈페이지
 월 15만원 내외의 저렴한 임대료로 입주 가능한 엘엑스팩토리 사무실. 젊은 예술가와 창업가들의 아이디어가 교류된다. ⓒ엘엑스팩토리 홈페이지

 

엘엑스 팩토리는 단순한 관광지만의 역할을 하는 공간은 아니다. 저렴한 임대로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자본이 넉넉하지 않은, 작은 규모의 회사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저렴한 업무공간이자 예술가들이 재능을 발산하고 교류하는 꿈의 공간이기도 하다. 오래된 방직공장 터가 새로운 문화예술의 트렌드를 직조하는 꿈의 공장으로 바뀌며, 엘엑스 팩토리는 유럽을 대표하는 도시재생의 성공 사례가 되었다.

 

 

일본 농촌 마을을 살린 거대한 논 아트, 탄보 아트(田んぼアト)

도시재생 사례는 아니지만 문화예술을 통해 지역재생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사례로 ‘탄보 아트’를 주목해 볼만 하다. 일본 아오모리현에 있는 이나카다테(田舎館)는 인구 약 8,000명이 거주하는 작은 농촌 마을이다. 현재 이 작은 마을은 1993년부터 매년 진행된 논 아트 프로젝트, 즉 탄보 아트로 인해 연간 방문자 수 34만 명, 연간 입장료 수입이 6,200만 엔에 이르는 주요 관광지로 발돋움했다.

 

1993년 제 1회 탄보 아트 ⓒ이나카다테 공식 홈페이지

 

탄보 아트의 시작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젊은 층의 인구 감소로 마을 활성화를 위해 고민하던 주민들은 특산품인 쌀을 홍보하기 위해 벼농사 체험 이벤트를 진행하게 된다. 방문객에게 다양한 색상의 벼 품종을 알리기 위해서 논 위에 글자와 그림을 표현하게 된 것이 탄보 아트의 시작이 되었다. 처음에는 3색의 벼로 시작했지만 해마다 기술이 발달하여 현재는 품종 개량된 7색의 벼 13종을 사용하고 있다.

탄보 아트는 매년 초 투표를 통해 테마를 정하고, 마을의 미술 교사가 만든 도안 디자인에 따라 마을 주민들과 일반 방문객들이 함께 벼를 심어 완성한다. 모내기도 함께 진행하여 지역의 쌀을 이용한 특산품을 증정하기도 한다.

 

2018년 영화 <스타워즈>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탄보 아트. ⓒ이나카다테 공식 홈페이지

 

작은 농촌 마을에서 시작된 탄보 아트는 일본 각지의 약 40곳으로 확대되었고, 탄보 아트 서밋이 개최되는 등 주요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이제는 국경을 뛰어넘어 한국과 중국, 대만 등 주변 국가까지도 퍼져나가고 있다. 이처럼 지역 대내외적으로 지속적인 관심이 생길 수 있도록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중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집행될 때 마을이 살고, 주변 도시가 살아날 수 있다.

 

 

도시를 한층 풍요롭게 만드는 문화예술 기반의 도시재생

도시재생은 실행 전략을 어떻게 설정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큰 자본을 투자해 재탄생한 공간이 유명세를 타고 방문객이 늘어나며, 단기적인 수치상으로는 성공한 듯 보이지만, 결국 지역과는 관계없는 상업적인 카페, 레스토랑 거리로 전락하고 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공공디자인이란 모두를 위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다
- 영국 공공 디자이너 토마스 헤더윅

이처럼 문화·예술이 단순히 보여주는 아름다움이 아닌, 도시재생의 핵심 가치로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도시의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과 맞닿아 있어야 한다.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업을 위해선 지역만의 문화적 정체성을 설정하고, 주민들의 삶 속에서 지속 가능한 자립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도시의 쇠퇴로 우범 도시로 전락했던 뉴욕 볼티모어의 도시재생 사업은 자그마치 40여 년에 걸쳐 촘촘하게 진행되었고, 현재 1,0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관광도시로 재탄생했다. 단기간의 성과보다는 지역 고유의 문제 해결에 기반한 문화예술 도시재생을 계획하고 진행한다면, 국내에도 국제적으로 회자되는, 건강하고 지속가능 한 재생 도시 사례가 탄생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Reference]

국토교통부 도시계획현황통계 2015 

김은정 (2016).도시재생과 연계한 건강도시 조성의 가능성. 도시행정학보, 29(3), 1-18

http://www.rcda.or.kr/data/data_view.asp?idx=7058 

http://www.vill.inakadate.lg.jp/

https://livejapan.com/en/in-tokyo/in-pref-tokyo/in-tokyo_suburbs/article-a0002624

https://www.makehope.org/?p=27949

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1909240254b 

https://surc.or.kr/ur_worlds/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