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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Enzaim Life/Enzaim People

방옥(안방+감옥)에서의 코로나19 자가 격리 체험기

by Enzaim 2021. 8. 3.

이렇게 방문을 활짝 열고 글을 쓸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어 자가 격리에 들어간 2주 동안의 방옥(안방+감옥) 생활은 아마 평생 잊지못할 경험이 될 것 같다. 회사에서 헬스케어 디자이너로 코로나 19 예방, 진단, 치료를 위한 각종 제작물을 기획하고 만들며 나름 국가 방역에 기여해 왔다고 자부하던 터라 갑작스러운 자가 격리 통보에 당혹감은 더 컸다.

생각지도 못한 코로나 검사
월요일 오전, 공부하고 있는 대학원 교수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제 미팅 멤버 중에 한 명이 확진자와 같이 식사를 해서 오늘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었으니 검사를 받으라는... 확진자도 아니고 밀접접촉자와 동석이면 뭐... 괜찮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었지만... 회사가 전면 재택근무를 시행할 정도로 워낙 코로나 예방 관련해서 민감한 데다, 가족이 있는 몸이어서 걱정을 가득 안고 서둘러 근처에 있는 선별진료소로 향했다. (지역별 선별진료소 찾기)
1년 넘게 검사할 일 없이 잘 버텼는데 드디어 나도 받는구나 ㅠㅠ 투명 아크릴 너머 훈남 의료진이 '코 들고 아하세요' 할 때의 민망함이란. 부디 안 아프게 찔러 주세요...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외치며 검사를 받았다. 사람들은 검사받을 때 고통스럽다고 하던데 난 숙련자에게 검사를 받아서인지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별거 아닌데?!
잘 참으셨다는 칭찬과 함께 검사는 끝이 났고 그제서야 더운 날씨에 방호복과 아크릴 통속에서 하루 종일 검사를 진행하는 의료진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다. 오랫동안 애써주시고 계신 방역 당국과 의료진 여러분 감사합니다ㅠㅠ
그렇게 검사를 받고 가족들에게 연락을 해서 상황을 알렸다. 특히나 여러 질병으로 고위험군에 속하는 친정 엄마에게는 KF 94마스크를 꼭 쓰고 계시라고 했다. 내일이면 검사 결과가 나오고 밀접접촉자 친구만 음성으로 나오면 나도 문제없겠지. 특별한 증상이 없었기에 하루만 안방에서 버티면 되겠구나 싶었건만...
다음날 아침 코로나 음성 문자에 기뻐할 틈도 없이, 내 옆자리와 맞은편 자리 학우 두 명이 확진자로 결과가 나와 문제가 심각해졌다.

밀접접촉자의 후회와 아찔함
밀폐된 좁은 공간에서 옆자리와 앞자리 학우가 확진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머릿속은 수많은 질문과 후회, 두려움으로 가득 찬다. 그 친구들과 신체적 접촉이 있었나? 집에 오자마자 손은 닦았나? 다음날 팀원들과 같이 점심을 먹었는데 말을 너무 많이 하지는 않았나? 아이가 다음날 학교를 갔는데 등등... 손씻기를 수시로 하라고 귀에 못이 박히게 듣고 디자인도 그렇게 많이 했건만... 집에 오자마자 손도 씻지 않고 아이를 부둥켜안았던 기억... 라면이 먹고 싶다며 오자마자 가족들과 오손도손 둘러앉아 먹었던 기억 등등... 만약 내가 확진자였으면 가족, 회사, 아이 학교 다 난리가 났겠구나...ㅠㅠ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확진자 학우 또한 만났던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하며 미안함을 전하는데 그 또한 마음이 참 아팠다. 일상을 아예 멈출 수도 없고, 디자인 자문이라 실물을 봐야 하는 상황이니 부득이하게 미팅이 진행됐던 것이었는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각자 미안한 마음을 누군가에게 전하며 두려운 시간을 맞이했던 것 같다. 일단 네 몸부터 챙기라며... 난 괜찮다고 위로했는데... 결국 그 친구들 중 한 명은 폐렴으로 입원까지 해야 했다.
그런 와중에 조금 위안이 되었던 것은 내가 미팅 내내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평소 미팅하면서 음료도 잘 먹던 내가 이상하게 그날은 마스크를 벗고 싶지 않아 주는 음료도 사양하며 끝까지 버텼는데... 잘 지킨 방역 수칙 하나가 그나마 힘든 자가 격리 내내 '난 괜찮을 거야'라는 믿음을 주었다. 이런 일을 한 번 겪고 나니 마스크 착용과 손씻기의 중요성을 정말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는...!

유혹의 셀프 자가 격리
일요일에 모임이 있었고, 월요일에 코로나 검사. 그리고 화요일 학우들의 확진 판정이 있었으니 화요일 오후에는 자가격리인지 아닌지 보건당국에서 결과가 올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갑자기 확진자가 1,000명대로 넘어가면서 공무원들의 업무가 폭주했던 것 같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수요일 경 확진자가 살고 있는 보건소에 연락해서 확정된 것이 있느냐 물어보니 일단 대기. 내가 살고 있는 보건소에 자료가 넘어온 것이 있느냐 물어봐도 일단 대기. 결국 목요일 오전에 우리가 모임을 했던 신촌 관할 보건소에서 연락이 와서 역학조사를 받았고 밀폐된 공간에서 2시간 이상 머물렀으니 자가 격리를 해야 한다며 전화로 1차 통보를 받았다.
사실 자가 격리 자체보다는 확정되기 전 까지가 심적으로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사람의 심리라는 것이 강제로 자가 격리를 하라고 하면 오히려 순응하게 되지만 어떤 상황이지 모르고 기다릴 때는 오히려 초조하고 답답해서 이걸 내가 해야 하나 싶어 방문을 열고 도망치고 싶다는.. ^^;; 그래도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방 안에서 온전히 홀로 생활하며 연락이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렸는데 그게 시간이 지날수록 참 잘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 역시 월요일 오후부터는 학교와 학원을 가지 않았고, 가족들도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불필요한 외출을 안 하고 있던 터라 생각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본격적인 자가 격리를 시작할 수 있었다.

본격적인 방옥 시작!
자가 격리가 시작되면 보건당국으로부터 통지서를 받게 되고 그때부터는 법적 효력이 발생한다. 담당 공무원이 배정되고 안내 문자가 오면 자가 격리 앱을 깔고 개인 정보와 자가 격리 주소를 입력해야 한다.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씩 앱에 나의 상태를 남겨야 하며 GPS가 무조건 켜져 있어야 하고 핸드폰이 꺼지지 않도록 잘 유지해야 한다. 실시간 위치 추적을 하다보니 배터리가 생각 보다 빨리 닳아 잘 때도 충전기가 빠져 있지는 않은지 몇 번을 체크하며 긴장을 해야 했다.


동작 감지는 8시부터 21시까지. 1~2시간 동안 움직임이 없거나 격리 지역을 이탈하면 알람이 울린다. 나는 마지막 해제 전 검사를 받으러 갈 때 '격리 장소에서 벗어나셨는지 확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알람이 왔다. 이날 미리 담당 공무원에게 일정을 공유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알람이 크게 울리니 괜히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게 되고 눈치를 보게 되더라. 어느 자가격리자는 낮잠 자는 동안 알람이 울려 힘들었다고 하소연하던데 무단이탈 방지를 위해 철저히 관리가 되는것 같았다.
낮 3시경에는 AI(인공지능)로부터 연락이 오는데 꼭 받아서 통화를 해야 한다. 통화 내용은 열은 있느냐. 불편한 점은 있느냐 등등.
어느 날은 팀원들과 줌으로 회의를 하는 도중 전화를 받았는데 스피커를 통해 여러 사람 목소리가 들리니 AI가 조용히 듣고만 있고 질문을 하지 않더라. 뭔가 내가 밖으로 나가 사람을 만나고 있다고 의심하는 건가...? 나도 모르게 위축돼 공손히 전화를 받게 되었다^^; 같은 기간 자가 격리를 했던 경험디자인 교수님은 직업의식이 발동해 일부로 대답을 꼬아서도 해봤단다. 결론은 잘 알아듣지 못해 반복해서 질문을 했다고ㅎㅎ 아직은 AI가 정해진 답변 내에서 반응하겠지만 자가격리자가 많아질수록 수집된 데이터를 통해 조금은 더 자연스러운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더위와의 싸움! 캠핑 용품의 진가 발휘!
자가 격리를 하며 제일 힘들었던 것은 더위와의 싸움이었다. 한 여름에 마침 에어컨이 설치 안된 안방에서만 있으려니 땀이 주룩주룩... 자주 환기를 해야 해서 창문을 열어 놓으니 바깥의 더운 열기까지 한몫해 안 나던 열도 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격리 내내 체온은 36.8~37.2도. 나중에는 캠핑 장비로 사용하던 대용량 물통에 얼음을 가득 채워 냉수도 먹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타 먹었다. 방옥에서 먹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맛이란 정말ㅠㅠ. 거실에서 바닥 생활을 해야 하는 남편도 캠핑용 자충 매트를 활용하며 둘은 그렇게도 원하던 캠핑(?)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전 구입한 캠핑 장비들이 이렇게 빛을 발할 줄이야! 너는 계획이 다 있었구나!


베란다 풍경을 보며 먹는 고독한 식사
자가 격리 내내 삼시 세끼에 간식까지 꼬박꼬박 챙겨준 고마운 가족들. 식사는 아들과 친정엄마가 방 앞에 놔주면 받아서 먹고 다 먹은 그릇은 안방 화장실에서 1차 헹굼을 한 후 소독약을 마구 뿌려 다시 방 밖에 내어 놓는 식으로 진행했다. 초기에는 일회용 그릇을 사용해 먹고 바로 버리는 식으로 진행했지만 갇힌 공간에서 음식물이 묻은 쓰레기가 점점 쌓여가니 냄새도 나고 벌레도 생기는 것 같아 비위생적이더라. 자가격리자의 쓰레기는 해제전까지는 버릴 수도 없으니 대안으로 최소한의 그릇만 고정적으로 사용하고 소독을 철저히 하는 것으로 방역을 진행했다.


처음에는 바닥에 앉아 대충 한 끼 때우자 싶었다가 시간이 지나니 그 안에서도 낭만을 찾게 되더라. 고독하지만 베란다 뷰를 통해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도 보고 날아다니는 새들도 보고. 엎어져 있는 고무대야도 어찌나 이쁘던지. 일주일쯤 지나니 답답함보다는 나를 돌아보고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겨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며 그간 하지 못했던 일들을 찾게 되었다.

퇴근 후 시작된 대청소
자가 격리 내내 업무는 줌과 메일로 진행했다. 회사에서는 코로나 초기부터 거리 두기 단계에 맞춰 재택 일수를 조절해 가며 위기 대응을 해왔기 때문에 비대면으로 업무를 진행함에 있어 큰 불편함은 없었다. 다만 제한된 공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 앞에서만 있다 보니 다리가 붓고 허리와 어깨에 무리가 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업무 종료 후라도 몸을 조금 움직여 보자 싶어 이곳저곳을 들여다보며 정리를 시작한 것이 대청소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시작된 온라인 쇼핑과 각 잡힌 정리 정돈! ㅎ
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뒀던 옷장과 안방 베란다를 정리하며 조금 더 효율적인 정리 정돈을 위해 정리함과 철재 선반을 구매했다. 평소 인터넷 쇼핑을 하고 싶어도 퇴근 후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와 함께 하며 분주하게 보내기 때문에 온전히 물건 고르는 것에 집중할 수 없었는데 오히려 그 기간에는 격리되어 있는 것이 도움이 되더라ㅎ 그렇게 필요한 물건을 주문하고 택배가 오기만을 기다리니 상대적으로 시간이 좀 더 빨리 지나갔던 것 같다. 그렇게 남은 일주일은 저녁마다 정리 정돈을 하며 알차고 바쁘게 보내게 되었다.


긴급 구호 물품 / 코로나 자가 진단 키트
자가 격리를 하며 온 가족이 가장 궁금했던 것이 긴급 구호 물품이었다. 일주일이 지나갈 때 즈음 긴급 구호 물품이 도착했는데 그 안에는 쌀, 김, 갈비탕, 라면 등이 들어 있었다. 이미 아는 맛이고 흔히 구할 수 있는 물품이지만 꾸러미로 전달된 물품은 마치 어렸을 때 받았던 종합선물세트를 연상케 했다. 지친 일상 가운데 누군가 먹을 것을 주며 '힘들어도 먹을 것은 챙겨야지'하는 느낌이랄까? 삼시 세끼에 간식까지 챙김 받아 체중만 늘어나는 나에게 긴급하게 필요한 물품은 아니었지만 혼자 격리하며 외출도 할 수 없고 온라인으로 주문도 할 수 없는 누군가에게는 정말 필요한 생명 구호 물품이었으리라.


그 와중에 라면은 나에게도 아주 유용한(?) 아이템이었다. 격리 기간 중에 남편에게 부탁하여 코로나 자가 진단 키트를 구매해놨는데 어느 정도 콧물이 있어야 더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하는데 더운 날씨에 콧물이 쉽게 나오지 않더라. 내 손으로 콧속 깊이 면봉을 넣는 것은 겁나고 오매불망 콧물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라면을 먹다 보니 콧물이 슬슬 나오더라ㅎㅎ 이때다 싶어 급하게 먹던 것을 내려놓고 검사를 진행했다. 검사는 설명서만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도록 쉽게 구조화되어 있다. 1차 선별검사소에서 음성이 나왔지만 더위 속에 미열이 지속되면서 의심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한 번 더 '괜찮음'을 확인받자는 마음에 검사를 진행했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임신 테스트기와 비슷한 모양새에 선이 변해가는 상황을 바라보며 정말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 검사 결과는 음성으로 나왔고 이때부터는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었다.

휴마시스 코비드-19 홈 테스트


드디어 탈출!
자가격리자는 해제 전날 검사를 추가로 받아야 하고 최종 음성으로 나와야만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미리 담당 공무원에게 이동 경로와 시간을 공유해야 하고 자차(운전자 1인 가능)로 가거나 혼자 걸어서 이동해야 한다. 해제 전 검사를 받을 즈음에는 확진자가 1,600명을 넘나들고 있을 때라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갔음에도 불구하고 검사를 받으려는 사람들로 이미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12일 만에 외출이라니...!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바라본 바깥 세상은 매일 보던 풍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롭고 소중했다. 드디어 내일 정오면 해제구나. 주차할 곳이 마땅찮아 남편과 동행했는데 그날 길 한 번 헤매지 않고 운전하는 남편이 야속하더라. 조금만 더 바깥공기 좀 맡고 싶은데... 야속하다 야속해!!
다음날 아침 검사 결과는 음성! 정확히 12시에 소리를 지르며 방옥에서 탈출을 했고 나의 긴긴 자가 격리는 끝이 났다.


셀프 격리 기간까지 포함하여 잊지 못할 2주를 지내며 정리 중독에 빠진 나는 이제 안방을 벗어나 온 집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ㅎㅎ 오래된 아이 책을 정리하며 아이 방 구조도 바꾸고, 주방이며 붙박이장이며 그간 애써 외면하며 방치했던 '어지러움'들을 정리 중이다.
처음에는 아이와 문 하나를 두고 영상통화를 하며 안부를 전해야 하는 상황에 눈물이 났고, 아버지의 기일이지만 격리 중이라 가지 못해 답답했고, 직장과 주변에 폐를 끼친 것 같아 미안했고, 어쩔 수 없었지만 그 시간 자체를 피하지 못했음에 후회가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이켜 보니 감사하다. 확진이 아니었음에 감사하고... 게을렀던 삶에 활기를 주며 어지러웠던 일상을 정리하고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줘서 감사하다.
격리 기간이 누군가에게는 견디기 힘들 만큼 우울한 시간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꿀같은 휴식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꼭 겪을 필요는 없지만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한다면... 모두가 조금은 의미 있고 건강하게 보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온라인으로 소통하며 불편함을 감내해준 팀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하루 속히 코로나가 종식되어 소중한 일상을 되찾게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