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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Enzaim Work/MKT & Public

영화 감기와 헬스 커뮤니케이션

by Enzaim 2013. 8. 23.

영화 감기와 공중보건 위기대응 헬스 커뮤니케이션

 

아래 글은 엔자임이 PR전문지 더피알지에 연재하고 있는 '엔자임 헬스커뮤니케이션 닥터' 코너를 통해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www.the-pr.co.kr/news/articleView.html?idxno=8541

 

 

 

 

한여름에 때아닌 감기가 화제다. 지난 815일 개봉된 영화 『감기』의 관객이 2백만을 돌파했다고 한다. 더위를 날릴 납량특집으로 사람들은 지구가 기후변화로 인해 새로운 빙하기를 맞이하는 설정의 영화 『설국열차』에 이어, 또다른 서늘한 공포를 영화 『감기(영어제목 The Flu)』에서 찾는 것 같다. 현대사회에서는 이제 귀신보다는 아무래도 바이러스가 직접적인 신변의 위협으로  관여도(Engagement) 높게 다가오는 소재인가 보다. 연일 이어진 폭염주의보 아래 버텨온 관객이자, 국가의 공중보건위기 관련 커뮤니케이션 작업에 참여한 관계자로서 영화의 재미와 별점은 평론가의 몫으로 남기고 적어도 헬스 커뮤니케이션(health Communication)적 관점에서는 영화 『감기』를 흥미롭게 관람했다.

 

영화는 119 구급대원으로 활약하는 장혁(지구 역)과 호흡기질환에 전문성을 가진 감염내과 의사로 분한 수애(인애 역)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영화적 과장을 허용한다면 상당 부분 의학적 검증과 공중보건 전문가의 조언을 토대로 만들어 진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관람중 괜시리 옆 좌석 관객의 계속된 기침소리에 민감해지곤 했지만, 처음에 우려보다는 영화를 보고 적잖이 안심이 됐다. 그러나 국가적 재난에 준하는 공중보건 위기에 대응하는 위기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는 영화를 보지 못한 상당수의 관객이 가질 오해를 최소화 하기 위한 진실을 말하고 싶어졌다. 물론 본 영화는 특정 인물, 지명, 사건과 관계가 없습니다라는 자막에서부터 스크린은 시작되고 있다.

 

감기독감은 다르다.

 

우선 영화제목에 쓴 감기(Common Cold)’와 미국이나 영국에서 독감(Influenza)’으로 통용되는 영화의 영어제목인 플루(The Flu)’는 명확히 구별된다. 감기는 재채기, 코막힘, 콧물, 미열 등을 동반하지만 대개는 건강한 일반인이 특별한 치료 없이도 저절로 치유된다. ‘감기는 약을 먹으면 1주일, 약을 먹지 않으면 7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믿고 개인적으로는 계절성 독감을 감기로 오인해 막연히 버티다가 폐렴으로 병이 깊어져 입원까지 한 아픈 전력이 있다. ‘독감이라는 용어로 인해 오해하기 싶지만, 독감은 말그대로의 독한 감기는 아니다. 독감은 감기보다 빠르다. 독감은 공기로 사람간에 빨리 전염된다. 반면에 감기는 접촉으로 감기 바이러스가 옮겨진다. 독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한 급성 호흡기 질환으로 코나 목, 폐를 침범하며 갑작스런 고열, 두통, 근육통, 전신 쇠약감과 같은 전반적인 신체 증상을 동반하면서 전세계에서 발생한다. 계절 구분이 있는 우리나라와 같은 지역에서는 매년 겨울에 소규모로 유행되고 있다. 또한 독감은 전염성이 강하고, 노인이나 소아, 다른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 걸리면 사망률이 증가하고 합병증의 발생 위험이 높다.*(서울대학교 제공 의학정보)

이 때문에 국민들의 주의가 필요하고 특히 사회취약계층에게는 더욱 큰 위협이 된다. 몇 해 전 필자는 독감의 위험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대한소아청소년과개원의사회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싸이월드가 공동으로 진행한 전국 사회복지시설의 어린이에게 계절독감 예방백신을 무료 접종하는 캠페인의 기획에 참여한 바 있다.

 

 

 

이처럼 계절형 독감은 질환이 규명되어 병원에서 의료진을 통해 예방 백신이나 항바이러스제 같은 적절한 치료로 건강을 지킬 수 있지만, 영화에서 보듯 보다 심각한 문제는 ‘신종플루’이다. 독감 중에서도 치료제가 없는 신종독감이 신종플루다. 새로운 질환이 무섭도록 빠르게 퍼지고, 치사율이 높다면 원인균을 규명해 치료제를 개발하거나 백신을 개발해 미처 대응을 하기도 전에 끔찍한 재난은 이미 일어나서 상황이 파국을 맞을 위험이 잠재한다.

 

판데믹이 뭐냐고?

영화에서는 공공의 적이 된 정치인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 판데믹(Pandemic)’이란 용어가 등장한다. 2009년 한국에도 상륙한 신종플루(H1N1)’사태 때 국민에게도 많이 알려진 이 용어는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를 일컫는다. 판데믹 인플루엔자는 30년을 주기로 도래한다는 설이 있다. 1918년 스페인 독감때는 약 5,000만명이 사망했고, 2003년 한국이 성공적으로 국내 유입을 막아낸 중증 급성 호흡 증후군 싸스(SARS 사스-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의 경우에는 8천여명의 감염자와 774명의 사망자를 기록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염병의 위험도에 따라 전염병 경보단계를 16단계까지 나누는데, 판데믹은 복수의 지역과 국가에 유행하는 최고 경고 등급인 6단계에 해당한다. 우리나라는 공중보건위기나 기후재난 등의 국가재난을 [관심(Blue)]-[주의(Yellow)]-[경계(Orange)]-[심각(Red)] 4단계로 대비하고 있는데, 국내에 인체감염이 발생하고(주의), 사람간에 전파가 진행되고(경계), 일반 인구 사이에 유행하는(심각) 단계로 구분된다. 영화에서는 분당 신도시 전체가 폐쇄되고 즉각 범정부적으로 대응태세에 돌입하는 [심각] 단계가 바로 발령되는 상황이 묘사되고 있다.

 

치사율 100%면 급속히 전염될 수 없다.

영화 『감기』에 등장한 신종플루(‘H5N1’으로 언급)는 초당 감염 속도는 3.4, 치사율은 100%,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사람들은 격한 기침과 함께 붉은 반점, 피가 섞인 토사물을 쏟아내는 증상을 동일하게 보이는 것으로 표현된다. 영화에서 고병원성 신종플루(H5N1)의 치사율을 100%로 선전한 것은 순전히 영화적 공포를 극대화 하기 위해 마케팅적으로 선택한 영화적 과장이다. 또한 영화 중에 감염율이 50%”라는 언급이 나오는데, 이는 가장 최악의 경우였던 1918년에 스페인 독감의 대유행 때 5-14세 소아에게 보인 감염율의 수준에 해당한다. 당시 치사율은 10%~30% 수준이었다. 게다가 영화적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제작진은 컨테이너를 통한 밀입국자의 국가를 전세계에서 전염병의 감염율이 가장 높은 수준으로 발표된 적이 있는 베트남을 택했다. 죽음이라는 최악의 레벨의 상황을 인위적으로 의도한 창작의 조합이나 자칫 영화적 설정에 익숙해진 국민이 일상속에서 웬만한 호흡기 질환의 자극에는 둔감하게 반응할까 염려가 되기도 한다.

 

공중보건위기대응과 관련한 전문의의 말을 빌자면 치사율이 100%이면 이미 관련한 사람이 모두 사망해 더 이상 사람들간에 전염이 확산될 위험이 오히려 줄어드는 아이러니를 가진다고 한다. 모건 프리먼과 더스틴 호프만의 주연으로 널리 알려진 영화 아웃 브레이크에서 다룬 에볼라 바이러스의 경우 감염후 50~80%의 치사율을 보였지만 발생지인 콩고 주변 지역에서 그친 이유도 이때문이다. 2009년 대한민국 국민을 공포에 떨게 만든 당시의 신종플루(H1N1)도 빠른 확산성 때문에 국민을 불안하게 했지만 결과적으로 치사율은 계절독감보다 낮은 수준이어서 질환의 공포가 과장된 것 아니냐는 언론의 문제제기도 있었다. 최근 국민에게 일명 살인진드기란 용어로 불리면서 불안하게 만든 SFTS(중증 열성 혈소판 감소 증후군)도 실제로 해당 질환에 감염 후 생명을 잃을 확률이 6%대로 알려지면서 진정국면을 맞이했다. 현실에서는 감염율이 높고 치사율이 10% 정도만 되는 신종플루가 나타나도 충분히 긴장할 수 밖에 없다.

 

개념 기침이 필요했다

공중보건위기대응의 초기단계의 원칙은 영화에서 극중 발견된 환자를 격리병동(isolation A)에서 의료진이 차단을 위해 애쓰는 장면에서 보듯 선격리, 후치료이다. 2009년 한국에서 신종플루(H1N1)가 초기 확산될 때에도, 최초 감염의심환자가 탑승한 비행기에 동승한 수녀님과 외국인 영어학원 강사가 초기 역학 추적과 격리대상에서 우선 포함되지 못한 상황에서, 그대로 지방으로 모두 이동한 것이 확인되어 이슈가 되었다.

 

감염이 확산되는 상황을 더 들어가 보면 무서운 신종플루에 걸린 밀입국자중 유일한 생존자인 몽싸이는 우연히 귀여운 인애의 딸 미르를 만났을 때 기침을 하면서 이를 옷으로 가리는 극단적인 기침에티켓’(?)을 보여준다. 반면에 아무것도 모르는 한국의 대다수 시민들은 버스나, 전철, 편의점, 카페, 예식장, 학교 등 다중장소에서 손을 가리지 않고 그대로 허공에 대고 기침을 해 공기 중에 침(비말)이 퍼지는 2, 3차 감염을 확산시키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른바 개념있는 기침이 필요함을 절감하는 대목이다. 국내외 기침에티켓과 관련한 안내 포스터에는 기침을 할 때 윗소매를 가려서 하고, 해외에서는 가족간에도 특히 영유아 기침환자를 안을 때에는 환자의 턱을 자신의 어깨에 올려 얼굴에 대고 기침하지 않도록 자세히 안내하는 경우도 있다. 영화에서 호흡기 전염에 대응한 ‘N95마스크가 눈에 띄지만, 상대적으로 기침에티켓을 제대로 하는 한국 사람을 볼 수 없었던 것은 어쩔 수 없이 헬스커뮤니케이션 관계자로서 가지는 아쉬움이다.

 

 

 

아이들에게 소구하기 위해 슈퍼히어로 캐릭터를 응용한 플루 대응 포스터

(출처: Childrens Hospital of Wisconsin)

 

치료제와 예방백신이 공급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영화 감기에서처럼 이 모든 신종플루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대처는 기존의 타미플루와 같은 치료제로 듣지 않는 변종 신종플루를 치료하는 항바이러스제를 마련해 최대한 빨리 보급하는 것으로 집약될 수 있다. 영화에서 항체 혈청을 맞은 우리의 딸 미르가 평화의 상징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영화에서처럼 단지 하루 이틀 만에 면역항체가 생성되어 이를 바로 환자에게 공급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의료전문가들은 항체를 만드는 데에만 최소 2주가 소요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세계보건기구(WHO)나 미국의 질병관리본부(CDC) 외 전세계 주요국가의 보건당국에서 마련한 공중보건 위기대응 메시지 매뉴얼에는 백신공급에는 3~6개월이 소요된다고 안내하고 있다. 이는 임상시험을 통한 치료제 또는 백신의 안정성 검증과 대규모 의료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생산수단 확보 생산량을 감안한 기간이다. 감염이 우려되는 노인이나 영유아, 임산부와 같은 취약계층에게 예방백신을 접종하려면 범국가적인 의료 대응 시스템이 계획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짐작컨대 폐쇄된 47만 분당시민에게 모두 접종할 백신을 준비하려면 아무리 짧아도 3개월은 족히 걸릴 것이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영화 감기는 기본적으로 영화적 재미의 목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창작의 산물이지만, 헬스 커뮤니케이션의 모든 메시지에서는 과학적인 근거에 기초한 근거 중심(Evidence-based)의 메시지 제공이 너무나도 중요하다. 물론 2009년 국민이 겪은 바와 같이 신종플루 사태의 심각단계에서 흔히 퍼지는 근거없는 루머나 괴담에 대응하는 사회문화적인 메시지도 별도로다른 차원에서 사전에 충분히 고려되고 준비되어야 하는 이중적 과제를 가지고 있다.

 

 

 

영화 감기 (자료: 영화사 제공 스틸컷)

 

영화 감기에서는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두사람이 나온다. 분명히 마스크를 벗고 수많은 시신들 사이를 누비며 잠재적 감염의 상황에 노출된 것이 확실한데도 끝까지 끄떡 없어서 또다른 항체 보유자로 의심되던 소방방채청의 열혈 인명구조대원 장혁(지구 역)과 그의 든든한 동료 유해진(경업 역)이 그들이다. 마침 두 배우 모두 공교롭게도 공중파 TV의 예능프로그램인 ‘12진짜 사나이에서 맹활약 중이어서 영화 감기의 홍보를 위한 출연이 아닌지 의심되지만 영화적 몰입을 위해 신경쓰지 않기로 한다.

 

 

시민을 살상하는 당사자로 등장한 군인도 현실에서는 국가의 재난사태 때 위기대응 단계에 따라 재난의 현장에 투입이 고려되는 우리의 소중한 아들, 딸임에는 틀림없다. 아울러 하얀 의사가운을 입고 동요하는 군중과 진압군 사이에서 평화의 사도로 나온 감염내과 전문의 수애(인애 역) 또한 엄마로서 딸 미르를 위해 격리구역을 벗어난 영화적 일탈을 눈감아 주기로 한다. 공중보건 위기상황에서는 군인 못지 않게 최전선에서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헌신하는 분들이 바로 의료진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2003년 싸스(SARS)계기로 출범한지 10년이 되는 대한민국 질병관리본부의 중요성 또한 더 말할 나위 없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다만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준엄하다. 준비하지 않는 사람은 실패를 준비하는 사람이다. 성경의 한 구절로 이를 대신한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누가복음 17:3)

 

. 더 커뮤니케이션즈 엔자임 이병일 이사 bilee@enzaim.co.kr

Healthcare MBA. 공익마케팅본부 이웃(EOOT)을 총괄하고 있고, 보건복지부 커뮤니케이션 컨설팅, 질병관리본부 공중보건위기대응사업단의 공중보건 위기대응 메시지를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