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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Enzaim Insight/Enzaim Column

헬스커뮤니케이션닥터_죽음도 커뮤니케이션이 되나요?

커뮤니케이션 전문지 더피알에 기고되고 있는 '헬스 커뮤니케이션 닥터' 기사 내용을 소개합니다80세 베티 할머니가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와 스웨덴 스톡홀롬 우드랜드 공동묘지를 통해 “죽음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이 어떤 것인지 이야기 해보았습니다



죽음도 커뮤니케이션이 되나요?



[헬스커뮤니케이션닥터] 마지막 소통, 호스피스 병동 밖으로 나와야



[더피알=김동석] 공포는 불확실성에서 온다. 어둠 속에서 사람들이 공포를 느끼는 이유는 어둠이 주는 불확실성에 기인한다. 감염병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5년간 국내 결핵 사망자 수는 매년 2230명(2013/2014년 기준)에 달한다. 다른 감염병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망자를 내는 ‘대한민국 최악의 감염병’이라 할만하다. 이는 지난해 메르스로 인한 사망자 수(36명)의 무려 62배에 달하는 수치다. 



하지만 국민들이 느끼는 메르스 공포는 결핵에 비견할 바가 아니다. 결핵과 달리 메르스는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신종(새로운)’ 감염병이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메르스 사태가 남긴 교훈) 이 역시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감이 실체보다 훨씬 더 큰 공포를 갖게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메르스와 같은 신종 감염병은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감이 실체보다 훨씬 더 큰 공포를 갖게 한다. 

사진은 지난해 메르스 의심환자가 이송돼 의사에게 검진을 받은 모습. 뉴시스



죽음이야말로 공포와 불확실성의 극한이다. 누구도 죽음 이후를 예측할 수 없다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죽음 뒤 삶을 인간이 예견할 수 있다면 죽음은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일 리 없다. 죽음은 항상 인간의 손을 떠나 신의 영역으로 인식돼 왔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죽음을 언급하는 것조차 꺼린다. 



그만큼 죽음은 커뮤니케이션하기 가장 힘든 분야일 것이다. 동시에 헬스 커뮤니케이션이 다뤄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치료불가능한 말기암에 걸린 환자에게 죽음의 가능성을 알리는 건 쉽지 않다. 의사들 역시 늘 접하는 일임에도 당사자와 그 가족에게 죽음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우회적으로 전할 경우 지나친 희망을 줄 수 있고, 직접적으로 알리면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수 년 전만 해도 말기암 환자 가족들에게 당사자가 사실을 최대한 늦게 알도록 하거나 돌아가실 때까지 함구하라고 말하곤 했다. 최근에는 가능한 환자에게 객관적 사실을 있는 대로 알리는 것이 추천되고 있지만, 실제 본인의 가족이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땐 그런 결정이 쉽지는 않다.



80세 베티 할머니의 메시지



지금은 호스피스를 중심으로, 그것도 죽음에 임박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평온한 마지막을 위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고 있을 뿐이다. 이제는 죽음에의 소통이 호스피스 병동 밖으로 나와야 한다. 의사, 환자, 일반인 모두 죽음에 대한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배워야 하고, 생활의 한 부분으로 가까이 논의돼야 한다. 죽음 역시 인간이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2014년 인스타그램을 떠들썩하게 했던 80세 베티(Betty) 할머니의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폐암으로 사망하기 전 8개월 간 베티 할머니가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는 여느 사람들과 사뭇 달랐다.



▲ 80세 베티 할머니는 폐암으로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 인스타그램을 통해 행복한 일상을 사진으로 공유했다. 

출처=GrandmaBetty33



국 인디애나주에 사는 평범한 할머니가 70만명이 넘는 팬을 보유한 소셜미디어 스타가 된 계기는 폐암 진단을 받은 후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였다. 할머니의 마지막 날들을 기록하고 싶다는 고등학생 증손자의 뜻에 따라 인스타그램(GrandmaBetty33)에 사진을 올린 것이다. 



힘든 투병 과정 중에도 베티 할머니는 익살스런 표정과 이색적인 분장을 한 모습들을 꾸준히 게시했다. 무지개색 파마머리 가발을 쓰고 루돌프 사슴코 같은 가짜 코를 달거나, 검정 가죽점퍼와 핑크 두건을 착용하고 오토바이에 올라타 포즈를 취하는 등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즐거운 일상을 보여줬다. 



죽음을 대하는 베티 할머니의 자세는 전 세계인에게 죽음은 회피 대상이 아닌 생활의 일부며, 행복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 역시 소중한 인생의 일부라고 했을 때 그 기간 역시 가능한(쉽지 않겠지만) 행복하게 보내야 한다는 평범하지만 실천하기 힘든 사실을 일깨웠다.



공간이 주는 깨달음



항암제를 PR활동을 하다 보면 사람들 사이에서 생명에 대한 큰 차이를 느낀다. 말기암 환자의 생명을 3개월 정도 연장해 주는 고가의 항암제가 개발됐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큰 비용을 들여 고작 3개월 더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이야기하곤 한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3개월이 별것 아닐 수 있지만, 말기암 환자 당사자에겐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한없이 소중한 기간이다. 물리적 시간의 길이는 동일하지만 처한 상황에 따라 그 시간이 주는 가치와 의미는 다르며, 죽음에 대한 생각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생의 마지막 3개월은 지나온 30년만큼이나 소중할 수 있다.



지난해 가족과 함께 스웨덴 스톡홀름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스톡홀름에 가면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었다. 다름 아닌 우드랜드(Wood Land)라는 공동묘지다. 스톡홀름 외곽에 위치한 우드랜드는 공포, 우울, 슬픔이라는 죽음의 전형적 연상이 아닌 아름다움과 안식으로 승화시켜 설계됐다. 공동묘지가 아닌 1만여 평에 달하는 아름다운 숲이라고 하는 게 더 맞아 보인다. 



인적이 드물고 날씨도 흐릿해서 공동묘지를 방문하기에 안성맞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공동묘지에 들어서자마자 펼쳐진 푸른 언덕, 그 위에 작품처럼 십자가가 서 있었다.



▲ 우드랜드 공동묘지는 죽음의 전형적 연상이 아닌 아름다움과 안식으로 승화된 공간이다. 김동석 제공


언덕을 넘자 나타나는 빼곡한 숲과 길 그리고 1평이 채 되지 않는 작은 공간에 서로 다른 사연을 갖고 예쁘게 꾸며진 묘비석들. 묘지에 핀 꽃을 가꾸며 망자와의 아름다운 추억을 회상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소풍을 가듯 우리가족은 산책을 했다. 각각의 묘비석들이 간직하고 있을 여러 이야기를 상상하며 묘지 하나하나를 감상했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결국 죽으면 자연으로 돌아가 아름다운 숲을 만들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슬픔보다는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광고나 홍보뿐만 아니라 건축, 숲, 벤치, 묘비를 포함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훌륭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최근 임종 체험이 인기라고 한다. 유서를 써보고 입관을 해 죽음에 대해 미리 고민해 봄으로써 현재 삶의 소중함을 인식하자는 취지다. 죽음도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을까? 


살아있을 때 잠시나마 죽음을 성찰해 보는 것은 생의 가치, 혹은 우리에게 주어진 찰나의 시간 역시 한없이 소중하다는 사소한 진리를 상기시켜 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커뮤니케이션 주제가 아닐 수 없다.



헬스커뮤니케이션 전문회사 엔자임 헬스(Enzaim Health) 대표 김동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