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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을乙’의 반란, 환자 주권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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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乙’의 반란, 환자 주권시대



  '아는 것이 힘이다' 라는 말이 있다. 지식이 곧 힘이라는 이야기다. 협상에서도 상대방보다 많은 정보를 가진 쪽이 유리할 수 밖에 없다. 의료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동안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약사, 간호사 등 의료인들은 의학 정보를 독점해 왔다. 특히 의사들이 갖는 힘의 원천은 지식, 즉 정보에서 온다. 십 수년 동안 공부한 의학 전문가와 병에 걸려서야 병원과 해당 질병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환자 사이에 정보의 비대칭은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

 

 

  의료정보의 비대칭은 의료시장이 시장Market으로 기능하는 데 장애요소가 되어왔다. 시장은 기본적으로 서비스 제공자와 소비자로 구성된다. 서비스 제공자생산자는 소비자에게 보다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제품과 서비스 제공을 통해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여기에 생산자 간 경쟁이 더해지면 소비자의 선택권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소비자가 왕'이라는 이야기도 이런 맥락에서 생긴 것이다. 하지만, 의료에 서비스라는 개념이 정착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전의 일이 아니다. 왕王이어야할 의료 소비자환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돈을 지불하면서도 의료 서비스 제공자의 눈치를 봐야했다. ‘갑’과 ‘을’이 바뀐 형국이다. 의료 정보를 의료인들이 독점하면서 힘의 균형이 정보를 가진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이러한 의사들의 정보 독점 현상이 크게 완화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보 독점의 벽을 무너뜨린 가장 큰 공헌자는 다름 아닌 의사들 자신이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의사들은 다양한 루트를 통해 끊임없이 의료 정보를 쏟아 내고 있다. 질병 예방을 위한 공익적 목적의정보 제공은 물론이고, 환자를 유치하기 위한 마케팅적 목적으로도 의사들은 자신들이 독점하고 있던 의료 지식을 일반인에게 맘껏 개방하고 있다. 환자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러한 개방 현상은 더욱 가속화돼 의료 정보가 홍수를 이루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특히 대중매체는 이런 현상에 기름을 붓고 있다. 건강 정보에 대한 일반인의 욕구가 커지면서 건강 정보는 소위 잘 팔리는 상품이 되었다. TV에는 건강 프로그램이 넘쳐 나고, 신문들도 매주 고정 지면을 통해 새로운 건강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정보를 판매하는 미디어, 환자를 유치해야 하는 의료기관, 건강 정보를 갈망하는 소비자까지 3자의 욕구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셈이다.

 

 

  의료 정보에 노출된 환자들은 점점 더 똑똑해지고 있다. 미디어와 의사에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정보를 찾아 나서고 있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환자들은 전 세계에서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의료기술에 의사만큼 빨리 그리고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실제로 해외 보도나 해외 학술지에 발표된 내용을 가지고 와 처방을 요구하는 사례가 진료 현장에서 적지 않게 나타난다.

 

 

  의료 정보의 개방은 환자들이 그동안 잊고 있었던 의료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다시금 상기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헬스케어 시장에서 환자의 입김이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온·오프라인에서 활동하고 있는 크고 작은 환우회는 수백 개에 달한다. 그중 2010년 창립한 한국환자단체연합회www.koreapatient.com 는 환자주권 시대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단체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환자 및 보호자를 포함해 총 10만 명 정도 참여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환자 단체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증상이나 치료 과정, 주의사항 등 투병 정보를 나누는 정도의 활동을 해왔다. 그야말로 마음의 위안을 받는 작은 커뮤니티 수준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단순한 정보 지원을 넘어 환자들의 투병에 실질적 도움을 주며, 환자의 진정한 동반자 역할을 해나가고 있다. 환자의 권익을 침해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정부, 병원, 제약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한다. 환자 단체가 헬스케어 시장에서 방관자가 아닌 의료개혁의 능동적 주체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환자 샤우팅 카페’를 열어 환자들이 겪는 고통을 마음껏 외칠 수 있는 소통 공간을 마련하기도했다. 2012년 종로의 한 카페에서 열린 이 행사에서 환자들은 의료사고나 비합리적 제도로 고통 받고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토로하고 함께 공감하며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다. 매회 의료계는 물론이고 정치인, 변호사, 언론인 등이 대거 참석한다. “지금까지 환자들은 의료 정책이나 제도에 무조건 순응해야 하는 의료 약자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이제 환자는 더 이상 그냥 ‘아픈 사람’이 아닌 ‘의료 소비자’로서 권리를 누려야 하며, 아울러 투명한 의료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의무도 함께 가져야 한다”는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의 이야기는 최근 크게 변화된 환자의 위상을 대변한다.

 

 

  정보의 비대칭성 해소와 환자주권 시대의 도래는 헬스케어 시장이 시장으로서의 본래 기능을 회복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쏟아 내는 의료계의 문제점들이 자칫 병원과 의료인에 대한 묻지마 식 불신을 키울 수도 있다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의료는 기술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와 축적된 경험 외에 의사와 환자 간의 신뢰가무엇보다 중요한 분야다.

  환자주권의 시대는 불신과 대결의 시대가 아닌, 상호 신뢰의 시대가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노력을 함께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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