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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Enzaim Insight/Enzaim Report

[헬스케어 디자인] 저시력자들의 생활 환경 개선을 위한 고대비 디자인

 

 

2019년 기준 시각장애인 수는 25만여 명으로 우리나라 국민 206명 중의 1명은 시각장애를 겪고 있다. 그럼 시각장애인은 어떤 상태를 의미할까? 많은 사람들이 시각장애인은 앞이 아예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전체 시각장애인 중에서 시력이 0으로 빛 지각을 전혀 하지 못하는 전맹은 0.9%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저시력자로 명암이나 색깔을 희미하게나마 인지할 수 있다. 그래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도블록도 눈에 잘 보이도록 노란색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최근 장애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감염을 막기 위해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되면서 청각장애인들이 의사소통에 불편이 커지고 있다. 청각장애인들의 경우 입 모양이 보이지 않을 경우 소통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 자칫 생존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시각장애인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대다수 승강기에 항균 필름을 부착하는데 이로 인해 읽기가 어려워져 승강기 사용에 불편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대비를 활용해 저시력자들의 사고 발생 위험을 줄인 헬스케어 디자인(Healthcare design) 사례가 주목을 받고 있다.

 

7:1 명도 차이 적용, 더 또렷하게 가구 식별 가능하게 해

저시력은 질병뿐 아니라 자연스러운 노안으로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저시력자들을 위한 생활 환경 디자인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주거 환경에서 가구들의 형태가 뚜렷이 보이지 않아 의자나 침대에 앉을 때 낙상사고가 발생하거나 위험한 순간에 처할 수 있어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태국의 홈프로(HomePro)는 저시력자들의 불편함과 사고 발생 위험을 덜어줄 수 있는 7:1 가구 디자인을 제시하며 더 나은 생활 환경을 제공하는 캠페인을 펼쳐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홈프로는 ‘모든 가정을 위한 하나의 가게(One shop for all home)'를 모토로 건축자재, 인테리어 부품, 가전제품 등 집과 관련된 모든 것을 판매하는 대형마트다. 스웨덴의 이케아와 우리나라의 하이마트를 연상시키는 홈프로는 가정의 생활환경과 스타일 개선을 목표로 가족 형태, 연령, 주거 환경에 따른 홈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홈프로에서 제시한 7:1 가구 컬렉션은 물체의 가장 밝은 부분과 가장 어두운 부분과의 명암 대비를 7:1 이상으로 높여 형태가 좀 더 뚜렷하게 보이게 한다. 예를 들어, 핑크색 테이블에 7:1 이상 명도 차이가 나는 파란색 외각 라인을 일정 두께로 주어 저시력자들이 물체의 경계와 형태를 더 잘 인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식이다. 이로써 저시력자들은 보다 안전하고 편안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특별한 기능을 추가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모양의 가구에도 배색된 색 사이 명도차를 높여 외각 라인을 준다면 저시력자들까지도 편리하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가구가 될 수 있다.

여기서 '명도'란 색의 밝고 어두운 정도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흰색에 가까울수록 명도가 높고, 어둡고 검은색에 가까울수록 명도가 낮다고 표현한다. 모든 색상마다 기준 색에서 흰색을 섞을수록 명도가 높은 색이 되고 검은색을 섞을수록 명도가 낮은 색이 되니 이 기준만 기억한다면 다양한 색상의 고대비 조합을 만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고대비라고 하면 막연하게 빨간색과 파란색의 조합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일례로 우리나라 안전 표지판 중에서도 주정차금지의 경우 빨간색과 파란색을 이용해 표기하고 있지만 실제 빨간색과 파란색의 명도 차이는 4:3으로 1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저시력자나 색각이상자들이 식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명도차를 높여 시인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홈프로가 저시력자들을 위한 가구에 적용한 7:1 명도 비율은 W3C(World Wide Web Consortium)에서 제시한 ‘웹 콘텐츠 접근성 가이드라인’(WCAG: Web Content Accessibility Guidelines)을 기준으로 했다. W3C는 웹 표준을 개발하고 장려하는 조직으로 회원기구, 정직원, 공공기관이 협력하는 국제 컨소시엄이다. 이 기관은 다양해지고 있는 웹 환경 개선을 위해 각종 지침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저시력자들의 웹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시각적 요소를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고대비를 사용하도록 한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전경색(텍스트)과 배경색의 명암대비가 4.5:1(AA등급)을 충족하면 문제가 없지만, AAA등급을 받으려면 7:1 이상의 비율을 유지해야 한다.

홈프로는 7:1 이상의 AAA 등급을 유지하면서 조화로운 색상을 조합하여 기능성과 심미성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았다. 이는 특별한 대상을 위해 독특하게 제작된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경험의 차별성 역시 해결해 줄 수 있어 저시력자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적용 가능하다. 7:1 가구는 구매한 사람들의 약 98%가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었다고 하니 앞으로 더 많은 가구에 이러한 고대비 디자인이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고대비 디자인, 다양한 생활 건강 용품에 적용 가능

이러한 고대비 요소를 활용하여 생활 속에서 개선 가능한 디자인은 어떤 것이 있을까? 가령 홈프로의 가구들을 지금 당장 노안으로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위해 구매해 배치한다고 생각해 보자. 기존 주거 환경과의 조화와 더불어 사용하던 제품을 모두 교체해야 하는 문제로 선뜻 구매하기에는 고민이 될 것 같다.

그렇다면 기존 가구들의 테두리에 색상별 ‘안전 테입(Safe tape)’을 붙여 사용하는 건 어떨까? 저비용에 손쉽게 각자 주거 환경에 어울리는 부모님 맞춤형 가구를 연출할 수 있어 더 실용적인 아이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안질환 관련 약품 라벨에도 디자인을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작년 한 해 안약과 무좀약을 헷갈려서 발생하는 약물 오용 사례가 41건이나 발생했다고 한다. 또 녹내장 안약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용법에 맞추어 사용하는 게 중요한데, 같이 처방받는 인공눈물액 디자인과 비슷해서 약물 오남용이 발생한다고 한다. 형태의 차별성도 중요하지만 고대비 색채 배색을 통해 라벨 디자인의 시인성을 높이는 것도 시도해 봄 직하다.

​현대인에게 익숙한 매장 주문 시스템, 키오스크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프랜차이즈뿐만 아니라, 키오스크를 활용하여 주문받는 상점들이 점점 늘고 있어 저시력자나 색각 이상자, 노인 사용자를 위해 키오스크 UI(사용자 환경, User Interface) 디자인에 고대비 디자인과 확대 가능한 돋보기 기능을 적용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더불어 키오스크 테두리에도 고대비 색상을 적용하면 저시력자들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고대비 명도 차는 인지성, 명확성을 높여준다는 점에서 디자인 외에도 브랜드를 기획할 때 매우 중요한 요소로 사용될 수 있다. 핵심 컬러를 정해놓고 그 안에서 톤을 조정해가며 컬러를 사용하면 통일감과 동시에 다양성 또한 느낄 수 있어 활용만 잘한다면 효과적이고 차별화된 브랜딩이 가능하다.

요즘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디자인적 요소가 중요해지고 있다. 7:1 가구 디자인이야말로, 디자인으로 세상을 더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헬스케어 디자인(Healthcare design)의 가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하겠다.